불타는 적개심 사라진 리더십 싹수 노란 국회- 초선 의원들이 평가한 17대 국회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4.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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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설문 조사한 결과, 초선 의원들은 17대 국회에 D학점(67.9점)을 주었다. 이들은 여야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각 당 지도부가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국회가 휘청댄다고 분석했다.
지난 5월, 새내기 의원 1백87명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17대 국회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이들에 거는 세간의 기대는 남달랐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대선자금 수사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16대 국회는 기억하기조차 싫은 ‘최악의 국회’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 속에 출범한 17대 국회 역시 초반부터 ‘싹수가 노랗다’는 평을 얻고 있다. 이념 공방에 파묻혀 해야 할 숙제조차 제대로 끝내지 못한 채 첫 정기국회를 마감한 것이다. 12월14일 참여연대가 발표한 16대 국회와 17대 국회 비교 자료에 따르면, 17대 국회의 의안 처리율과 법안 처리율은 각각 24.6%, 17.5%로 16대 국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변화와 개혁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을 담아 초선 의원들이 대거 진출한 데 비하면 형편없는 실적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눈총을 사고 있는 17대 국회에 대해 기대주였던 초선 의원들은 어떤 진단을 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초선 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정기국회 평가를 비롯한 현안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2월8일부터 1주일간 실시한 설문조사에는 전체 초선 의원 1백87명 가운데 1백29명이 응답했다.

 
열린우리당·민주당이 매긴 국회 성적 ‘극과 극’


열린우리당 71명, 한나라당 42명, 민노당 9명, 민주·자민련·무소속 각 2명, 당을 표시하지 않은 의원 1명 등 모두 1백29명이 매긴 17대 국회의 성적은 평균 67.9점이다. 낙제를 겨우 면한 ‘D학점’에 해당한다. 집권 여당이라는 책임감이 반영된 때문인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매긴 점수가 70점으로 가장 높았고, 한나라당은 66.7점을, 민노당과 민주당은 각각 59.2점과 35점을 주었다.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훨씬 더 가혹하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리서치&리서치가 12월1일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8백명)이 매긴 17대 국회 평균 성적은 44점(44.27)에 그쳤다. 한마디로 ‘정신 차리라’는 엄중 경고인 셈이다.

17대 국회가 초반부터 이렇게 낙제점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초선 의원들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여야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심리’를 꼽았다(85명, 65.9%).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을,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을 대화 상대이자 공동운명체라고 여기지 않고 무조건 투쟁할 대상, 극복해야 할 적으로만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열린우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한나라당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는데, ‘이철우 의원 간첩 파동’을 겪으면서 인간 취급도 하기 싫다”라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솔직히 여당 의원 중에는 탄핵 역풍 때문에 어부지리로 배지 단 사람이 많은 것 아니냐”라며 아예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가 많다.

김수진 교수(이화여대·정치학)는 이에 대해 “과격하고 비타협적인 중진들이 상대에 대한 적개심과 피해 의식을 앞세워 확전에 나서고, 초선들마저도 갈수록 감정적 대립에 감염되는 양상이다”라고 비판했다.
초선 의원들이 두 번째로 꼽은 17대 국회의 문제점은 ‘각 당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다(19명, 14.7%). 하지만 이 답변을 놓고는 여야 사이의 편차가 심한 편이다. 열린우리당에서는 18.3%(13명)가 지도부의 전략 부재를 비판한 데 반해, 한나라당에서는 불과 3명(7.1%)만이 지도부를 탓했다. 이는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이른바 4대 개혁 법안을 둘러싼 여야 지도부간 샅바 싸움에서 한나라당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불만이 더 크다는 의미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지도부가 4대 입법을 하나로 묶은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 바람에 4대 법안 가운데 하나라도 반대하는 사람은 무조건 반 노무현, 반 열린우리당 연대에 동참했고, 결과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은 사립학교법·언론개혁법·과거사규명법 같은 나머지 3개 법안도 처리하지 못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열린우리당에서는 또 처음부터 국보법 처리 시점을 ‘연내’라고 못박아 여당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힌 점, 밀어붙일 때 못 밀어붙이고 양보해야 할 때 과감히 물러나지 못해 협상의 묘미를 발휘하지 못한 점 따위를 지도부의 패착이라고 지목한다.

17대 국회마저 ‘생산성 낮은 막말 국회’로 전락하는 데 일조한 ‘대정부 질문’과 ‘국정감사’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정감사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몰아치기’를 할 것이 아니라 ‘상시(常時) 국감’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1백4명, 80.6%).

여야간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대정부 질문에 대해서는 일문일답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현재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49.6%)는 의견과 ‘미리 서면 질의를 하고 대정부 질문에서는 추가 질의를 하는 쪽으로 바꾸자’(44.2%)는 의견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당 별로 보면 열린우리당에서는 ‘바꾸자’(53.5%)는 쪽이, 한나라당에서는 ‘현행 유지’(61.9%) 쪽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난번 대정부 질문 당시 이해찬 총리에 대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일방적 공격 때문에 여당 의원들이 더 문제 의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민노당은 5 대 4로 ‘현행 유지’ 의견이 약간 우세했다.

이번 정기국회 내내 정치권을 뒤흔든 국가보안법 처리에 대해서는 여야는 물론이고 각 당 안에서도 의원들마다 해법이 갈린다. 여야를 통틀어 가장 많이 나온 해법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형법으로 보완하자’는 안이다(47명, 36.4%). 열린우리당 당론이라는 점 때문인지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 44명이 대거 이 안을 지지했고 민노당에서 2명, 한나라당에서 1명이 가세했다.

 
국가보안법 해법 ‘각양각색’


그 다음으로 많은 ‘소폭 개정’(23명, 17.8%)에는 한나라당 의원 19명에 열린우리당 1명, 자민련 2명, 무소속 1명이 찬성했고, ‘정부참칭 조항 등 대폭 개정’(22명, 17.1%)에는 한나라당 의원 20명, 열린우리당 의원 2명이 동조했다. 열린우리당 강경파와 민노당이 주장하는 ‘완전 폐지’(18명, 14.0%)에는 열린우리당 11명, 민노당 7명이,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체 입법’(17명, 13.2%)에는 열린우리당 13명과 민주당 2명, 무소속·기타 각 1명씩이 가세했다.

국보법 해법이 각양각색인 것은 그만큼 당별, 의원별 이념 분포가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이념 성향’과 ‘자기가 속한 당의 이념 성향’을 5점 척도(1이 극좌, 5가 극우라고 할 때)로 표시해 달라는 조사에서 전체 평균은 각각 2.57과 2.87로 나왔다. 중도 좌파가 대세인 셈이다. 하지만 당별로 가면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이념 평균(2.33)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보는 자기 당 이념 평균(2.48)은 좀더 왼쪽으로 옮아간다. 반대로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념 평균(3.10)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보는 자기 당 이념 평균(3.76)은 한참 더 오른쪽이다. 민노당의 의원 평균과 당 평균은 각각 1.44, 1.56으로 ‘명품 좌파’를 주장할 만하다.

‘색깔’의 편차가 너무 커서 국가보안법을 어느 한쪽으로 결론 내리기 어려울 뿐더러, 설령 결론을 내더라도 그 사이 주고받은 상처가 쉽게 치유되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첫 학기 낙제점에 턱걸이한 17대 국회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하루빨리 국보법 문제를 매듭짓는 길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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