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져도 너무 밑지는 ‘유학 장사’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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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경쟁력 떨어져 ‘많이 나가고 적게 들어와’…공교육 정상화가 해결 관건
유학 사업도 국가간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적으로 해외 유학생 규모는 연간 2백만 명에 이르고, 이 숫자는 2025년까지 4배 이상 늘 것이라고 한다. 이 먹잇감을 놓고 지난 50여 년간 세계의 대학 교육을 지배해온 미국과 ‘신흥 유학 대국’을 꿈꾸는 중국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대학원에 원서를 낸 외국 학생은 1년 전보다 28% 줄었으며, 실제 등록한 숫자도 6% 감소했다. 30여년 만에 처음 줄었다. 하지만 영국과 독일은 유학생 숫자가 전년에 비해 각각 15%, 10% 늘었다. 미국에서 ‘제5의 서비스산업’이라고 불리는 유학생이 감소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 손실로 직결된다. 미국이 유학생의 등록금과 생활비로 벌어들이는 돈은 한 해 1백20억 달러에 달한다. 유학생 감소는 전세계의 고급 두뇌들이 미국에 와서 공부함으로써 미국 학계 등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미국 교육계는 우려한다.

지난해 미국 유학생 숫자가 줄어든 것은 다른 선진국들이 유학생 유치에 적극 나선 데다 ‘9·11테러’ 이후 학생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진 탓이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으로 가는 아시아 유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채어갔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가 유학생 유치 경쟁에 새로 뛰어들었다. 미국 유학생이 8만명 가량으로 가장 많은 인도와 6만2천명으로 2위인 중국이 대학 교육에 많이 투자하면서 해외에 유학할 필요성이 줄었다. 중국은 국내 100개 대학을 세계적 수준의 연구기관으로 만드는 것을 국가적 우선 순위로 추진하면서 미국 대학에 근무하는 중국인 학자들에게 더 나은 조건을 내걸고 귀국을 권유하고 있다.

중국은 해외 유학생들을 끌어들이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중국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한 해 동안 세계 1백75개 국가 출신 7만7천여 명이 중국에서 유학했다. 이 가운데 92%가 자비 유학생이고, 절반 가량(3만5천3백여명)이 한국 유학생이다.

중국 정부는 ‘2007년까지 외국 유학생 연인원 12만명 유치’라는 목표를 세우고, 유학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각종 조처를 취하고 있다. 조기 유학생을 위해 국제부를 신설하고, 기숙사를 새로 마련하기도 한다. 중국은 이제 경제 대국뿐 아니라 ‘유학 대국’의 메달 또한 거머쥐겠다는 야심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유학생 장사’를 독차지하다시피 해온 미국은 유학생들을 통해 국내에서는 ‘두뇌 이용’ 효과를 보고, 이들이 자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친미파’가 되어 미국의 이익에 기여하도록 만들었다. 중국 역시 그런 혜택을 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유학생 장사’는 어떤 성적표를 가지고 있을까.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한국 학생은 계속 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현재 유학 중인 한국인 학생은 18만7천6백83명으로 2003년보다 17.4%나 증가했다. 이는 고졸 이상의 학생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어서 초중고생의 조기 유학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많아진다.

또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국민이 해외 유학 및 연수 비용으로 실제 지불한 돈은 약 60억 달러(약 7조1천억원)에 이른다. 이는 우리 나라 전체 사교육비(13조6천억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이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 수와 이들이 국내에서 쓰는 돈은 턱없이 적다.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1만6천8백32명이고, 이들이 국내에서 쓴 돈은 한 해 평균 1백79억원에 조금 못 미친다. 경제성만 놓고 보면 우리 나라 유학 사업은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는 셈이다.

공교육에 대한 절망이 외국 유학 부추겨

물론 유학 사업의 수지를 단지 나간 돈과 들어온 돈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국내로 다시 돌아와 적절한 경제 활동과 문화 활동을 한다면 국부 축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수한 인재가 유학 갔다가 학업을 마친 뒤에도 귀국하지 않는다면 ‘두뇌 유출’이라는 적자 요인이 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해 말 정부 초청 외국인 장학생 사업 확대를 골자로 한 ‘외국인 유학생 유치 확대 종합방안’을 마련했다. 2010년까지는 외국인 유학생을 5만명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경쟁력으로는 ‘유학생 장사’는 밑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4년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교육 부문 경쟁력은 60개국 중 44위로 나타났다.

‘중등학교 중도 탈락자 현황’을 집계한 적이 있는 한국교육개발원 박현정 교육통계센터 운영실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중학교 중도 탈락의 가장 큰 이유는 유학 및 이민이다. 이는 현 공교육 체제에 대한 불만과 사교육비 부담 때문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중학교까지의 교육은 의무 교육이어서 현행법상으로 초중생의 해외 유학은 불법인데도 조기 유학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역시 ‘조기 유학이 불법이기는 하지만 중도에 돌아와도 불이익을 주지는 않는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자녀를 조기 유학 보낸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전북 초등학교에 다니던 이효택군이 말레이시아로 가는 데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던 것도 공교육에서의 절망감이었다. 이군이 한국에서 공부할 때였다. ‘스승의 날’, 이군은 색종이를 이용해 선생님 선물을 정성껏 만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준 꽃다발과 함께 선생님께 드렸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군의 선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아이들이 가져온 ‘상자’ 선물에만 관심을 보였다. 이군은 이 날 크게 상처를 받았는지, 어머니에게 ‘다음부터는 나도 상자 선물을 준비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민영씨는 ‘이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이구나. 한국에서는 여간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가 없겠다’고 한탄하며 아이의 유학 준비를 서둘렀다고 한다.

서강대 전상진 교수가 말한 대로 현재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돌아볼 때 유학 수지 적자를 해결할 직접적인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 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가 많이 들지 않도록 하면 해외로 나가는 유학생은 줄어들 수 있지만, 이 문제야말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가는 사람을 붙잡기보다는 차라리 외국 유학생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매력적인 ‘미끼’를 제공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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