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곁눈질 말고 미국에 올인하라”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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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씨 인터뷰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 일본 관계는 묘한 국면을 맞고 있다. 한편에서는 ‘한·일 우정의 해’를 선포하고 양국이 전에 없는 우의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일본은 지난해 터진 ‘가짜 유골’사건을 둘러싸고 북한과 갈등의 파고를 높여만 가고 있다. 남북 모두 통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분단과 그로 인한 남북한의 성립이 일제가 남긴 ‘식민 통치의 쌍생아’라는 점에서, 최근 일본의 움직임과 북·일 간의 관계 악화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과연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시사저널>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지난 1월26일,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씨를 만났다. 1970년 일본에 건너간 이래 지난 35년간 남북한의 경계에 서서 반독재 투쟁과 분단 극복에 혼신의 힘을 쏟아온 정경모씨라면, 이 문제를 푸는 데 실마리를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는 몇 년 전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자신의 통일운동 근거지였던 도쿄에서 물러나 요코하마 시 고호쿠의 히요시혼마치에 있는 아담한 자택에서 <류(씨알)>라는 개인 잡지를 발행하는 한편, 황석영씨 소설 <장길산>의 일본어판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남북한과 일본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 평생을 바친 분으로서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의 의미가 남다를 텐데….

한·일 국교 정상화는 그 자체로 일본 식민 통치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데 큰 한계가 있다. 이는 국교 정상화에 대한 양측 주역들의 사고 방식을 엿보게 하는 수많은 발언을 통해서도 단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이른바 ‘기본 협정’ 조인식이 끝난 뒤 당시 한국 외무장관이던 이동원은 일본의 사토 총리에게 일본을 ‘형님의 나라’로, 한국을 ‘아우의 나라’로 지칭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 정부를 대표한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 뒤 많은 한국 정부 고관들이 그와 비슷한 발언을 했다. 수교 이듬해인가, 한국의 국방장관 민기식이 일본 방문 때 일본에 대놓고 ‘일본이 도와주지 않으면 한국은 망할 수 밖에 없으니 한국을 인연이 없는 나라(요소노 쿠니)로 생각지 말아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선생은 한·일 국교 정상화 문제가 결코 한·일 양국 간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나온 것임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다. 미국의 역할론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해 달라.

한·일 국교 정상화의 진정한 주역이 미국이었음을 예증하는 사례는 너무도 많다. ‘작계 5027’(미국 클린턴 행정부 시절 운용되었던 동아시아 군사 전략)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에도 ‘플라잉 드래곤’이니 ‘불 란’이니 하여 무수한 동북아 전략이 존재했다. 게다가 1960년대에는 일본에 ‘삼시(三矢) 작전’(64쪽 상자 기사 참조)이라는 가상 시나리오도 있었다. 미국 안보 정책의 본질을 해명해줄 수 있는 용어로, 한반도에서부터 중동에 이르는 이른바 ‘불확실성의 호(arc of uncertainty)’라는 것도 있다. 이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를 지키는 방어선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동아시아 방면에서 군사력을 전개할 때, 그 중심을 일본으로 상정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오늘날 이같은 미국의 전략이 일본과 더욱 더 일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일본의 국익 일체화가 오늘날 더욱 더 심해지고 있다’는 말은, 과거에도 그랬다는 의미인가?

맞다. 지난 1980년대 일본 총리를 지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씨는 미국의 입장에 서서 ‘일본은 (미국의) 불침 항모(unsinkable aircraft carriers)’론을 제기한 적 있다. 이보다 앞서 1960년대에는 한국전쟁 재발을 전제로 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파병을 용인하는 작전을 수립한 바 있다. 이 작전은 1965년 2월, 당시 일본의 사회당 의원이었던 오카다 하루오 씨에 의해 폭로되어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지만, 아직 전문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과거는 그렇다고 치고, 오늘날 일본이 미국과의 일체화를 가속화하면서 더욱 더 보수화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보자. 현재 일본에서는 자민당 간사장 대리 아베 신조가 총리 후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그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선동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는 일본 공영 방송 NHK가 일제 피해자인 종군 위안부 문제를 객관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을 내보내려 할 때 정치적 압력을 행사해, 일본의 국가 책임 부분과 쇼와 천황을 규탄하는 장면을 삭제하게 하는 등 프로그램을 축소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납치 문제에서 진짜 중요한 본질은, 지금껏 일본이 가해자의 편에 몰려 있다가 납치 문제를 빌미로 피해자임을 주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납치 사건은 일본의 평범한 시민의 처지에서 보자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대표적인 일본인 납치 피해자의 한 사람인 요코다 메구미의 경우, 그 부모가 아무 죄 없는 자신의 딸을 북한이 납치해간 데 대해 분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과거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이들은 책임이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요코다의 부모와 똑같이 굴 수는 없고, 굴어서도 안된다. 10만명에 이르는 종군 위안부에 대한 가해 책임을 회피하고, 극소수 납치 사건에 대한 피해 사실만 문제 삼는다면 이를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로 볼 수 있겠는가. 나는 납치 문제가 크게 번지는 원인이 피해자 입장에서 상대를 욕할 수 있는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얻게 된 데 있다고 본다.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ㆍ일 수교 협상에 의욕을 보인 바 있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고 보나?

고이즈미 총리가 집권 초창기 북·일 국교 정상화를 밀고 나가려 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가 2002년 9월 평양에 간 것은, 이라크 침공을 준비하며 북한을 눌러 놓으려는 미국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그는 또 동쪽 바람이 불면 동쪽으로 눕고, 서쪽 바람이 불면 서쪽으로 눕는 사람이다.

한·일 간에 국교가 수립된 지 40년이 지난 오늘날, 한ㆍ일 관계와 북ㆍ일 관계는 과거와 사뭇 양상이 달라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이며, 남북한은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이나 북한이나 더 이상 일본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일본의 대외 정책이란 어차피 미국의 의향에 따라 좌우된다. 가령 북한 핵 문제만 하더라도, 미국과 풀리지 않으면 일본과도 풀리지 않는다. 북한으로 보자면, 당장 자금이 급해 일본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닐 테지만, 이 역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없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북 모두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북한이 힘을 합치고, 미국이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가장 실망하는 쪽은 바로 일본이 될 것이다. 남북한 모두 지혜와 힘을 모아 고이즈미나 아베 같은 사람이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소망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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