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勞 전면전 ‘하투’에 달렸다
  • 장영희 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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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강경 일변도…정부도 ‘법대로’ 별러
노동계의 여름 투쟁, 이른바 ‘하투’가 본격화하고 있다. 6월30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각각 여의도와 종묘공원에서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날 열린 한국노총의 ‘노무현 정권 개혁 후퇴 규탄 및 2003년도 임단투 승리 총파업투쟁 진군대회’는 7월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연대 파업으로 이어져 또다시 한국 경제가 노동계의 파업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

노동계가 강경 일변도로 돌아선 계기는 노무현 정부의 첫 공권력 투입이었다. 6월28일 새벽 철도노조에 대한 공권력 투입이 이루어지자 민주노총은 “첫 공권력을 투입한 뒤 친자본으로 급선회했던 김대중 정부처럼 노무현 정부도 그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라며 즉각 대정부 총력 투쟁을 선언했다. 친노동자 성향이라는 노무현 정부는 과연 친자본으로 급선회한 것일까. 물론 정부는 정책 기조 전환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처음부터 하투에 대해 원칙을 지켜 왔으며 공권력 투입은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조흥은행처럼) 불법이라도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있으면 대화를 하지만, 철도노조의 경우는 그럴 여지가 없는 명백한 불법 행위여서 엄정하게 대응했다”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 정책이 변화했는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지만,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우향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한 말을 많이 쏟아낸 것은 사실이다. 노대통령은 6월27일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 사주를 만난 자리에서 재벌 특혜가 아닌 노동계 특혜를 언급해 파란을 일으켰다. 노동계가 받고 있는 세 가지 특혜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파업 기간 임금 요구 △해고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노대통령은 또한 노조 지도부를 위한 노동운동, 나아가 정치 투쟁은 정부가 보호할 수 없다거나 몇몇 노조가 정부 길들이기나 본때를 보여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일부 노동운동이 도덕성과 책임을 잃어가고 있어 우려스럽다는 발언으로 하투와 노조관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

노대통령이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발언의 이면에는 다분히 대기업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노대통령은 대기업 노조를 ‘노동 귀족’으로 싸잡기도 했다. 검찰이 노동 귀족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에 돌입했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것도 대통령의 이런 인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노대통령이 노동계를 자극하는 발언을 많이 하고 있는 배경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를 씻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올 하반기에 외국인 투자를 많이 유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 관계 안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라고 전한다. 청와대는 경제 회복의 결정적 동력으로 내·외국인 투자를 꼽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절박함을 간파했는지 요즘 자본가 진영에서도 대정부 투쟁이 한창이다. 전경련 등 경제 5단체는 지난 6월23일 성명서를 내고, 국가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경제를 파탄케 하는 노동계의 총파업에 대해 정부가 법과 원칙을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와 결단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압박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국내 기업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산업 공동화론’으로 맞불을 놓았다. 외국 기업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참이다. 정부에 성명서를 낸 서울재팬클럽을 필두로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등 외국 기업 단체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전투적 노조 때문에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요지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얼마 전 방한한 한·미 재계회의 모리스 그린버그 미국측 회장은 많은 미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할 의지가 있지만 호전적 노조가 있다면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를 중간에 끼워넣고 노동 대 자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1만~2만 달러 시절인 1960 ~1980년대 일본도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고 하지만, 왜 노사 분규는 끊이지 않을 뿐더러 과격해지고 있을까. 경영계는 노동계가 근로 조건과 관계없는 정치 투쟁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노동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법과 제도 변경을 문제 삼는 이른바 정치 투쟁이 근로 조건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지적한다. 공공 부문 민영화나 기업 합병·매수 등이 정부나 경영진의 고유 영역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친다면 노조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배부른 대기업 노조의 과격 투쟁은 여론을 악화시켜 노동운동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빚어낼 수밖에 없다. 고작 10% 남짓의 조직화한 정규직 노조의 파업이 정작 보호가 필요한 비정규직의 존립을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27%에서 57%에까지 이른다는 비정규직 비중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지만, 설령 27%라고 하더라도 이 비중이 경제 위기 이후 크게 늘어난 것은 틀림없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은커녕 ‘악 소리 한번 못내고’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2003년 노동 진영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우선 경기 침체기에 벌이는 파업은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기 어렵다. 보수 언론의 공세도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노사 분규 건수와 파업 일수가 적다는 통계를 내놓아도 별 소용이 없다.

노동조합 조직률마저 1989년을 정점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궤적을 보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노동계의 최대 현안이었던 산업별 노조로의 전환이 벽에 부딪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을 없애는 토대를 만들 수 있으며 정치적인 입지를 넓힐 수 있다는 산별 노조 전환은 몇몇 중소기업이 성공하기는 했지만, 6월28일 현대자동차와 대우조선해양에서 부결되어 크게 빛이 바랬다. 민주노총은 조합원 3만9천명으로 국내 최대 사업장인 현대자동차를 금속노련에 끌어들여 투쟁력을 강화하려고 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이번 하투에서는 결국 노·사·정 3자가 ‘끈질긴 대화와 어려운 타협’으로 상생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한 노동 전문가는 네덜란드의 예를 들었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초 수년간 노사 대립으로 산업 경쟁력을 상실할 위기에 봉착했으나 바세나 협약 이후 산업 평화가 정착되었다. 네덜란드 정부가 한국의 노사정위원회 같은 사회적 합의 틀을 만들어 노동자에게는 해고를 포함한 유연화를, 사용자에게는 비정규직 보호를 동시에 요구하는 사회 협약을 맺게 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 직속 기구인 노동개혁 태스크포스가 주도하는 이른바 사회통합적 노사 관계 구상이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2∼3년간 노사 관계를 규정할 이 구상은 올 연말쯤 뚜껑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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