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협상 핵심은 ‘평화협정’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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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궈 워싱턴 방문 때 물밑 조율…미국 NSC도 적극 개입
토니 남궁 미국 버클리 대학 한국학연구소 부소장을 지난 7월10일 서울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고 난 이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그를 지목해 ‘김정일의 대남특사’라고 주장해, 이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미국 국무부와 북한 유엔대표부 등 북·미 양쪽에 깊은 인맥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1995년부터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의 고문으로 활동해 왔다고 밝혔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지난 1월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한성렬 차석대사와 약 10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을 했던 인물.

당시 현장을 지켰던 그는“협상이 성공하면 미국은 북한과 고위급 회담을 열 계획이었다”라고 협상의 내막을 털어놓았다. 그가 말한 고위급회담은 바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과 강석주 북한 외교부 제1 부부장 간의 회담이었다.

그러나 협상 당일인 1월10일 북한이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바람에 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북·미 간의 주요 협상에는 항상 징크스가 따라붙는다. 때로는 계획적으로, 때로는 일부 세력의 반발로 인해 돌발 사태가 발생하곤 한다.”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그는 아쉬워했다.

다이빙궈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북한과 미국을 방문하면서 북·미 대화의 물줄기가 뚫리려는 시점에도 어김없이 징크스가 찾아왔다. <뉴욕 타임스>가 ‘때를 맞춘 듯’ ‘북한의 제2 핵 재처리시설 보유설’을 들고 나왔고, <뉴스 위크>는 한술 더 떠 북한이 이미 핵무기 3∼4개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돌출 보도’가 이번 협상의 전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징크스가 또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이번 회담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7월 18, 19일 다이빙궈가 워싱턴을 방문할 때 언론의 주요 관심사는 북한 핵 문제 관련 후속 회담의 형식 문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회담 형식 문제를 넘어서는 더 본질적인 의제가 거론되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핵 문제의 해법은 나올 만큼 나왔다. 따라서 현재 북·미·중 당국자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핵 문제를 넘어선’북·미 관계의 본질적 구도를 모색하는 일이다. 워싱턴의 한반도 소식통이나 중국의 북한 관계자들 얘기를 종합해 보면 앞으로 북·미·중 협상의 핵심 의제는 바로 ‘정전협정을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지난 7월19일 중국의 북한 소식통은 “다이빙궈가 조선과 미국을 분주하게 오가는 이유가 핵 문제 때문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중국은 이번 기회에 북·미 관계에 드리운 근본적인 장애 요인까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전협정 50주년이 되는 7월27일을 전후해 조선이나 중국·미국 등에서 어떤 메시지가 나올 테니 기다려 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 주변에서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한 군사 평론가는 지난 4월 초 워싱턴의 정보 관계자로부터 흥미로운 연락을 받았다. 정전협정 50주년이 되는 7월에 북·미 관계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18일께 그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협상 시간이 촉박해 50주년 기념일을 넘기게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베이징 회담의 후속 회담으로 5자 회담을 고수해오던 미국이 이번에 3자 회담을 먼저 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은 커다란 변화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강경파로 널리 알려진 존 볼턴 국무부 부차관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존 볼턴의 뒤에는 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있었다고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왜 3자 회담 수용 입장을 지지했을까. 그 이유는 지난 4월 베이징 3자 회담 때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이면에서 추진하고자 했던 ‘협상’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국가안전보장회의가 그동안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검토해왔다. 이번 회담의 배후에서 조명록 차수와 만나 그 문제를 협의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조명록 차수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베이징 이면 회담은 북한측 회담 대표 이 근의 핵 보유 발언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시사저널> 제706·707호 참조).

그렇다면 지난 18·19일 있었던 다이빙궈와 미국측의 실제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우선 북한측 원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워싱턴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북한측은 앞으로 3자 회담이 열리면 북·미 양자 대화를 통해 불가침협정이나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양자 대화를 통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그 다음 후속 다자 회담에서는 체제 보장 문제를 국제적으로 보증받는다는 2단계 방안이 핵심이다(14쪽 표 참조).
하지만 중국은 3자 협상을 미국을 회담장으로 끌어들이는 유인책으로 삼고 평화협정 문제는 4자 회담에서 논의하자고 북한을 설득해 왔다고 한다. 북·중 양국은 후속 회담을 4자 회담으로 하자는 데에는 일단 합의했는데, 거기에는 일본을 배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일본이 최근 미국의 대북 압박 전위대 역할을 한 것에 대한 괘씸죄뿐 아니라 정전협정이나 평화협정 논의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주요 이유이다.

그러나 미국측은 3자 회담에 대해서는 일단 양보할 수 있으나 후속 회담은 일본을 포함한 5자 회담으로 해야 한다는 입장을 완강하게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5자 회담이 열리면 그 자리에서 평화협정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포기 선언을 어떤 순서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양쪽의 입장이 팽팽했다. 북한은 3자 회담에서 ‘동시 행동조처’를 주장했다. 핵 포기 선언과 불가침협정 또는 평화협정 약속을 한묶음으로 합의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미국은 3자 회담에서 먼저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하고 그 다음 5자 회담에서 불가침 또는 평화 협정을 논의하자는 ‘선후 행동조처’ 방식을 내놓았다.

결국 이 협상의 결말은 중국이 미국의 5자 회담 안을 받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어떤 선물을 받아내 북한을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것이 워싱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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