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6자 회담‘3단계 협상안' 마련했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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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 회담에서 ‘체제 보장 후 핵시설 해체’ 제시할 듯
8월 말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인 6자 회담에서 북한은 핵시설 해체를 전제로 한 3단계 협상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이 최근 북·미 관계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한 북한측 협상안은 크게 △합의 단계 △ 실행 단계 △ 완성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20쪽 표 참조).

먼저 합의 단계에서는 미국과 한국·일본·중국·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불가침 및 체제 보장, 경제 지원 방안을 공동 선언 형식으로 보장할 경우 북한은 핵 개발 포기를 공식 선언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6자 회담 기간에 열리는 북·미 양자 회담에서 불가침 조약(또는 협정) 체결을 집중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불가침 조약은 북·미 양자 회담에서 다루고,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은 6자 회담에서 다룬다는 것이 북한의 기본 전략이다”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긍정적인 결론이 나올 경우 북한은 핵 시설 해체를 공식 선언하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실행 단계이다. 북·미 간에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고 미국과 한국·일본·중국·러시아가 1단계에서 합의한 내용을 국제법적 효력이 있는 외교 문서로 보장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경우 북한은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아들인다. 특히 이 단계에서 특징적인 것은 북한이 기존 5개국에 유럽연합(EU)까지 포함된 국제 감시단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존 볼턴 미국 국무차관이 일본 방문 길에 언급해 관심을 끈 다국적 감시단 수용을 북한이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밝혀진 사실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특히 유럽연합을 국제 감시단에 포함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적극 발전시키겠다는 북한측 의중이 깊이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다국적 감시단은 북한의 핵시설 해체 상황을 감시할 뿐 아니라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합의 사항을 준수하는지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이중적 성격을 띠게 된다.

북한 핵 문제 완전 해결을 의미하는 마지막 완성 단계는 바로 이 다국적 감시단이 북한의 핵시설 해체가 거의 완전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하는 것과 함께 시작된다. 이 완성 단계의 대미는 바로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의 국교 수립이다. 즉 북한 핵 완전 폐기와 북·미, 북·일 수교가 맞교환되는 것이다.지난 7월27일 정전협정 50주년을 전후해 관심을 모았던 평화협정 체결은 바로 이 북·미, 북·일 수교 직전에 이루어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평화협정 체결의 주체와 관련한 문제이다. 지난 8월9일 경기도 파주 보광사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불교 평화 포럼’에서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박명림 교수는 그동안 북·미 평화협정을 주장한 북한의 주장이 역사적·이론적으로 부당한 것임을 상세한 논거와 함께 주장했다. 즉 평화협정의 주체 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북한은 북한과 미국을 상정해온 데 비해, 한국 정부와 학자들은 남북이 주체가 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증해야 한다고 맞서온 것이다.

미국과 중국·북한 간에 관련 대상국이 모두 참여하는 포괄적 협정 방식이 거론되고 있어 협정 주체 문제를 둘러싸고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즉 남북한과 미국·중국을 모두 포함하는 4개국 평화협정 체결 방안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활약한 중국을 배려하고 무력 대치의 당사자인 한국의 지위도 인정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의 성격이나 법적 지위가 다른 4개국이 어떤 방식으로 협정을 체결할지는 좀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측 협상안의 요체는 북한이 궁극적으로는 핵시설을 해체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미국이 그동안 북한에 요구해온 점이기도 하다. 지난 7월 초 서울을 방문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북한이 외교 채널을 통해 핵시설을 해체하겠다는 입장만 전달해오면 미국은 대담한 해법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외교 소식통은 지난 8월7일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북한 체제 보장안은 바로 이같은 북한측 반응에 대한 답변이라고 밝혔다.

당시 파월 장관은 ‘미국 행정부가 서면으로 북한 체제를 보장한 뒤 의회 결의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방안’을 발표해 눈길을 모았다. 파월 장관이 이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 북한측이 뉴욕 접촉에서 미국에 대해 먼저 북한의 핵 포기 의사를 전하고 미국도 문서로 체제를 보장해 주기를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파월 장관이 휴가중인 부시 대통령을 찾아가 동의를 구해 그 날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게 된 것이다.

현재로서는 8월7일 파월 국무장관이 밝힌, 의회 결의를 통한 북한 체제 보장과 선제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안이 미국 국무부가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에 불가침 조약(또는 협정) 체결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으나, 이에 대해서는 의회 통과 문제뿐 아니라 미국 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해 쉽지 않은 형국이다.

미국 네오콘들은 북한 핵 문제를 6자 회담을 통해 해결한다는 데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다. 따라서 이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이끄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체제 보장안까지는 몰라도 미국의 무력 사용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불가침 조약 체결에는 결사 반대다. 언젠가는 북한과의 무력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네오콘들은 원래 이번 6자 회담을 대북 제재로 넘어가는 징검다리로 삼고자 했다. 선택적 저지(SI),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PSI)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왔던 연장선상에서 전면적 대북 제재로 전환하는 명분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네오콘들이 극성을 부릴수록 파월 장관과 아미티지 부장관을 중심으로 한 국무부 팀 역시 외교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금까지는 북한 역시 이에 호응하는 모습이다. 이번 6자 회담이 핵 문제 해결과 평화 정착에 전기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위기의 서곡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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