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송곳' 안대희의 뚝심 어디서 나오나
  • 고제규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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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 대검 중수부장(48)은 줄담배를 피웠다. “오프 더 레코드로 한 이야기인데, 그걸 쓰면 어떡하나.” 10월9일 오후 2시 안부장이 직접 대검 기자실을 찾았다. “정치 자금을 받아서 부정 축재를 일삼는 정치인이 있다.” 오전에 한 발언이 보도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줄담배 끝에 안부장은 “정치권에서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기사를 좀 빼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저녁부터 그 발언은 방송 전파를 탔다. 다음날 신문도 일제히 보도했다. 그의 말이 가지는 무게감 때문이다. 야당 대표가 ‘최고 실세’라고 치켜세우지 않더라도, 그의 말 한마디는 정국 기상을 바꿀 만큼 폭발력이 있다. 그는 거악과 싸우는 중수부의 수장이다.

“내게는 권력이 아니라 의무만 있다”

“실세라고 하면, 되는 것을 안되게 하고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다. 이제 내게는 의무밖에 없다. 마음이 아파도 길은 가야 한다.” 안대희 부장의 말이다. 갈 길은 가는 안대희 검사장. 그에게는 ‘강골 검사’라는 칭송과 ‘통제 불능 검사’라는 비판이 함께 한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 안대희 부장은 출신만 보면 ‘주류’이다. 경기고·서울대 법대의 ‘KS’ 표다. 1975년 약관 스무 살, 서울대 재학 중에 사법고시(17회)에 합격했다. 그런데 사시 17회 합격생 가운데 그보다 더 눈길을 모은 사람이 있었다. 스물아홉 살 늦깎이 청년이었다. 합격생 가운데 유일한 고졸 출신이었다. 그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둘은 사시 17회 동기다.

안대희 부장은 1980년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 다섯 때였다. 임관 6개월 만에 서울지검 특수1부 말진으로 배치되었다. 특수부 검사로 첫발을 내딛은 그는 칼을 뺐다. 사회악을 베는 데 그는 주저함이 없었다. 1981년 9월, 저질 무연탄을 사용해 연탄업자들이 부당 이익을 취한 사실을 적발했다. 연탄업자들을 줄줄이 구속했다. 안부장이 몸 담은 수사팀은 칼을 정부에 겨누었다. 동력자원부 윤석구 석탄국장을 뇌물 1천9백4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당시까지 최대 뇌물액이었다. 수사팀에 쏟아지는 격려는 뜨거웠다. 전두환 대통령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거악은 서로 통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광규씨(대한광업진흥공사 이사장)가 “윤국장만큼 깨끗한 공무원이 없다”라고 한마디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상황은 역전했다. 전대통령은 “검사들은 경제 공부나 하라”고 질타했다. 그 해 11월 검찰총장이 경질되었다. 특수1부장은 서울 고검으로 좌천되었다. 젊은 검사 안대희는 검찰 사상 유례 없는 치욕을 묵묵히 지켜보아야 했다. 무소불위 정권도 말단 검사까지 내치지는 못했다.

동기생 노무현이 ‘부림 사건’을 계기로 돈 버는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거듭날 때, 안대희는 ‘연탄 사건’으로 강골 검사로 거듭났다.

안대희 검사는 칼을 갈았다. 내공을 쌓았다. 그는 한번 칼을 뽑으면 일합에 그치지 않는다. 끝장을 보았다. 동업자들도 칼날을 비켜가지 못했다. 1993년 인천지검 특수부장으로 재직했던 6개월 동안 그는 인천 지역을 초토화했다. 브로커를 고용한 판사 출신 변호사를 구속했다. 법관 출신 변호사가 구속되기는 처음이었다. 돈 받고 기사를 써준 지방 신문 기자도 그의 칼에 날아 갔다. 바닷모래 불법 채취 사건 단 하나로 인천시의회 의장, <인천일보> 사장, 인천경영자협회 회장 등 내로라 하는 유지급들을 전부 구속했다. 이후 그는 대검 중수부 3과장, 중수부 1과장, 서울지검 특수 3부장, 특수 2부장, 특수 1부장 등 특수통으로 한길을 걸었다.

그에게는 청탁이 통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국민의정부 초기 시절, 그는 건설사 하도급 비리를 수사했다. 그는 끝장 수사로 정권 실세까지 연결된 업자들을 모두 구속했다. 정권 실세들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 2001년 연거푸 검사장 승진에서 떨어졌다. 그때 그는 명예롭게 물러날까 고민했다고 한다. 마음을 비운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삼수 끝에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지난 3월 그는 기사회생했다. 검찰 내 4대 보직(법무부 검찰국장·서울지검장·대검 중수부장·대검 공안부장)의 하나인 중수부장에 발탁된 것이다. 사시 동기생 노무현 대통령이 그의 수사력을 높이 샀다는 뒷말이 돌았다. 그는 한 귀로 흘렸다. 노대통령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그가 중수부장으로서 치른 첫 전투가 바로 노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연루된 나라종금 사건 재수사였다. 그는 직접 총장을 만나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며 재수사를 건의했다. 송광수 총장이 승낙했다. 검찰 일각에서는 안대희 부장이 칼을 뽑았다고 했다. 한광옥 전 청와대비서실장, 이용근 전 금융감독위원장, 김홍일 의원의 측근 정학모씨도 쇠고랑을 찼다. 박주선·박명환 의원 등 여야 가리지 않고 소환했다. 칼끝은 살아 있는 권력도 겨냥했다. 노대통령의 최측근 염동연씨를 구속했다. 중수부장으로서 치른 첫 전투의 결과는 화려했다. 그러나 그도 상처를 입었다. 대통령의 왼팔 안희정씨에 대해 두 차례나 영장을 청구했지만 번번이 기각되었다.

이를 두고 그가 ‘불패 신화’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따랐다. 한번 칼을 빼면 반드시 베어야 한다는 집착이 낳은 무리수라는 것이다. “진정한 무사는 뺀 칼을 다시 집어넣을 줄도 알아야 한다.” 안대희 부장과 함께 근무했던 특수부 출신 변호사의 말이다. 이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들은 자만심이 강하다. 무조건 자신이 손댄 사건은 기소하고 승소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안부장은 수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피의자가 시인할 때까지 부르고 또 불러 조사한다. 저인망식 수사로 모든 비리를 조사한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듯이, 결국 피의자가 입을 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중수부에서 수사를 받은 정몽헌 회장의 자살은 그래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에게는 권력이 아니라 의무만이 남아 있다는 안대희 부장. 그는 올해 여름 휴가도 반납했다. 일 욕심이 많기로 유명한 그는 나라종금 재수사 이후 현대 비자금 수사를 벌였다. 현대 비자금 수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시 SK 비자금 수사에 손을 댔다. 이번에는 노대통령의 영원한 집사 최도술씨가 걸려들었다. 중수부는 최씨를 기소하면서 ‘상상적 경합’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 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상상적 경합’ 관계로 적용한 것이다. 상상적 경합은 하나의 행위에 2개 이상의 범죄가 성립한다는 의미다. 검찰이 영장 청구 단계에서 정치인에게 상상적 경합을 적용한 전례가 없었다. 바로 법원의 영장 기각을 대비한 양수겸장이었다. 검찰 안팎에서는 최씨를 반드시 구속해 수사하겠다는 수사진의 의지라고 평가했다. 최씨 수사는 대통령 재신임 파문까지 불러일으켰다. 재신임 발언이 나온 날 안부장은 침묵했다. 하지만 침묵이 후퇴는 아니었다. 중수부는 지난 8월부터 정권과 유착설이 나돌았던 태광실업(박연차 회장)의 정치권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내사했다. 중수부장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거침없는 행보다.

안대희 중수부장의 수사 방식을 두고는 이론이 있다. 그러나 그의 철두철미한 자기 관리를 두고는 이론이 없다. 그는 후배 검사로부터 밥 한끼도 가려 먹을 줄 아는 청렴한 검사로 통한다. 그가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의 전통을 세울 수 있을지 다음 발걸음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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