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으로 불타는 노동자 분노
  • 신호철 (eco@sisapress.com)
  • 승인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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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이용석씨 등 노동자 3명 자살 기도 잇따라
“라이터 쥔 손을 치켜들고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여덟 자를 외쳤다. 그 때 이미 가슴과 배에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전남순씨(28)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광주전남지부 위원장 이용석씨(32)의 분신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10월26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전국 비정규 노동자 대회’가 끝나갈 무렵인 4시10분께. 결의문을 낭독하느라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군중 뒤편에서 불길이 일었다. “비명 소리에 뛰어가보니 불덩어리가 비틀비틀하며 걸어오고 있더라.” 현장에 있었던 이진희씨의 목격담이다. 불 붙은 조끼를 떼어내 겨우 진화했으나 이용석씨는 바닥에 몸을 굴려 도로 불을 붙였다. 이번에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한 동료가 거의 껴안다시피 하며 불길을 잡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용석씨는 10월27일 현재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신체의 85%에 3도 화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하다.

열흘 사이에 노동자 3명이 자살을 시도해 그 중 1명이 사망했다. 10월17일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이 크레인 기계실에서 목을 맸다. 10월23일에는 세원테크 노조 이해남 지회장이 분신했다.

지난 봄 대다수 언론은 ‘노조 공화국’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노동운동을 공격했다. ‘노조 공화국’에서 노조위원장들이 목숨을 던지는 사유는 초라하다. 김주익씨가 자살한 이유는 가압류와 손해배상소송 압력 때문이었다. 민주노동당 진상조사단은 ‘김주익 위원장의 임금 실수령액은 겨우 12만원이었다’고 밝혔다.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은 ‘업무방해죄’로 수배 중이었다. 세원테크 노조는 두 달 전 노조원 이현중씨가 사망한 것과 관련해 ‘노동 탄압 중지’를 외치며 천막에서 농성 중이었다.

10월27일 분신한 이용석씨는 분신 전날까지 공단측과 임단협 협상을 하고 있었다. 올해 처음 노조를 만든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은 협상이 난항하자 28일 총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한 상태였다. 노조는 “사측이 총파업을 막기 위해 정규직 채용 시험(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을 공고했다. 회사에서 노조원들에게 남들이 파업할 때 시험 공부를 하면 정규직 된다고 회유하는가 하면, 집에까지 전화했다”라고 밝혔다. 한 노조원은 이씨가 분신한 데 대해 “회사측과 협상을 벌이면서 쌓인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측은 즉답을 피했다.
10월26일 밤 한강성심병원을 찾은 민주노동당 노회찬 사무총장은 “최근 분신 정국은 회사 내부 문제라기보다 노동 현실을 도외시한 정부 대책이 낳은 결과다. 노동시장 유연화 어쩌고 하지만, 한국만큼 비정규직이 많은 나라가 드물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살 시도가 연쇄성이 있어 걱정된다. 싸우더라도 살아서 싸워야지 더 이상 죽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용석씨는 올해 32세로, 전남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10월23일에 쓴 것으로 보이는 유서는 ‘우리 공부방 어린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내 삶의 스승이자 등대였습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일과 후에 목포 지역 중·고등 학생들을 모아 영어·수학을 가르쳐왔다고 한다. 정규직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하는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의 월 실수령액은 정규직의 60%에 해당하는 1백4만원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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