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산불 재앙,워싱턴이 키웠다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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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정부·의회의 게으름·무관심 탓에 산불 커져
미국에서 산불은 하나의 ‘연례 행사’다. 올해 들어서만도 지난 9월 초까지 산림 6백72만 에이커(약 85억 평)가 산불로 인해 잿더미로 변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서도 특히 땅덩어리가 가장 넓고 산림이 풍부한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산불은 지진과 함께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그럼에도 최근 캘리포니아 주 남부를 휩쓴 산불은 예년과 비교도 안될 만큼 피해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0월21일 샌버나디오에서 처음 산불이 발생한 뒤 열일곱 군데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이번 산불은 11월1일 현재 한풀 꺾인 상태이지만 피해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산불은 발생 10여 일 만에 샌버나디오를 비롯해 5개 군에 걸쳐 서울의 5배가 훨씬 넘는 75만 에이커의 산림을 집어삼켰다. 전소된 가옥이 2천8백여 채에 피해액은 최소 20억 달러.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산불의 원인을 놓고 언론은 두 가지 진단을 내놓았다. 하나는 주 정부의 산불 진화와 관련한 보조비 지원 요청에 대한 연방 정부의 늑장 대처고, 다른 하나는 연방 의회의 무관심이다.
단적인 예로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샌버나디오와 리버사이드, 샌디에이고 주변을 둘러싼 울창한 산림 지역은 주로 소나무에 서식하는 딱정벌레가 옮기는 전염성 해충과 가뭄으로 인해 한 해 평균 50만 에이커 규모의 숲이 삭정이로 변한다. 이런 나무들은 천둥 번개나 조그만 성냥불 하나로 순식간에 거대한 산불을 일으킬 수 있는 ‘불쏘시개’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이미 지난 4월 산불 취약 지역에 대한 벌목 예산으로 연방재난관리청에 4억3천만 달러를 특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연방재난관리청은 산불이 한창 맹위를 떨치던 지난 10월24일 이같은 요청을 거부했다.

캘리포니아 주는 또한 다른 주와 함께 이미 1년 전부터 산불 예방 및 진화비 명목으로 연방 의회에 최소 1억2천만 달러를 집행해 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했지만 연방 의회는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처럼 늑장을 부리던 연방 의회는 이번에 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하자 부랴부랴 내년도 관련 부처의 예산 25억 달러를 편성해주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각종 환경보호 단체들과 정치권의 공방 역시 산불 대처를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이를테면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4억5천만 에이커에 달하는 국유림 중 산불 피해 우려가 심한 2천만 에이커에 대해 벌목을 장려하기 위한 ‘산림 육성법’을 의회에 제출했는데, 이같은 법제화 작업이 언제 마무리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환경단체들이 현재의 법안이 무분별한 벌목을 허용해 환경을 파괴하고 결과적으로 목재회사들의 돈벌이로 전락할 뿐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 당국과 주택건설업자들은 이번 산불을 계기로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건설업자들은 주택 당국자들의 ‘배려’에 힘입어 자연림을 낀 외곽 지대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해왔다. 주택난이 심각한 캘리포니아 남부의 경우 교외 산간 지대에 주택 건설이 허용되어 1993년 이후 주택 수십만 채가 분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큰 피해를 본 캘리포니아 남부의 경우 지난 10월 말까지 5개월 이상이나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막 지형이 많은 네바다와 유타 주 등의 산악 지대에서 발생해 고산 지대의 사막을 거쳐 불어오는 고온건조한 바람까지 캘리포니아 남부로 불면서 올해의 경우 특히 산불 위험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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