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로도 못막는 ‘서울경찰청장 파문’
  • 권은중 기자 (jungk@sisapress.com)
  • 승인 2000.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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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편중 인사’ 비난 부르고 여권내 갈등 조짐까지…이무영 경찰청장·김옥두 총장에 ‘불똥
박금성 서울경찰청장의 출신 고등학교 시비에서 비롯한 경찰 치안정감 인사 파문은 경찰의 현주소와 함께 정권 초기부터 제기된 호남 편중 인사 문제로 비화했다. 심지어 경찰 인사를 놓고 같은 여당끼리 치고 받은 정황마저 있어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박청장의 학력이 문제가 된 것은 12월7일자 <중앙일보> 김상택 만평 때문이다. 이 만평은 목포고 망년회 자리에서 한화갑 의원이 박청장 승진을 축하하고 있는 상황을 묘사했다. 이 만평이 나가자 ‘박청장은 목포해양고 출신’이라는 목포고 출신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목포고 동문회는 공식으로 정정을 요구했다. 다음날 기자들은 박청장의 학력 사항을 의심했고, 취재 결과 목포고를 졸업하고 조선대를 3년 중퇴했다는 박청장의 학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다.

경찰청의 상급 기관인 행정자치부 최인기 장관이 호남 출신인 데다 경찰청장·서울경찰청장은 물론 치안감 인사의 꽃인 경찰청 정보국장과 경기청장에까지 죄다 호남 사람이 임명되어, 해도 너무 한다는 말이 나온 터였다. 이런 때에 박청장이 학력을 속인 것은 ‘호남 인맥이 끼리끼리 다 해 먹는다’고 비판하는 야당에게 때려 달라고 스스로 머리를 내민 꼴이었다. 결국 박청장은 주변 압력에 굴복해 취임 이틀 만에 옷을 벗었다. 하지만 불길은 박청장의 사퇴로도 잡을 수 없을 만큼 번져 버렸다.

서울청장은 경찰청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어 박청장을 추천한 사람은 이무영 경찰청장이 된다. 따라서 화살은 이무영 청장과, 박청장과 같은 목포해양고 출신인 민주당 김옥두 사무총장에게 겨누어졌다.

이번 인사에서 이무영 청장이 유임될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11월 초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청장 퇴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경찰 개혁에 공이 크지만 호남 출신은 더 이상 곤란하다는 의견이 우세해 퇴진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였다. 이청장 후임으로 경기고·고려대 출신 윤웅섭 서울청장과 부산 동아대 출신 이헌만 경찰청 차장이, 서울청장으로는 광주일고 출신 김재종 경찰대학장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이청장은 유임되었고, 박금성 경기청장이 서울청장으로 승진 발탁되었다. 괘씸죄에 걸렸는지 이청장을 위협하던 치안정감 세 사람은 모두 옷을 벗었다. 이번 인사로 옷을 벗은 한 간부는 “인사는 순리대로 진행되어야 한다”라며 여운을 남겼다. 이 간부는 12월11일 현재 사표를 내지 않고 있다.

경찰 “개혁 물 건너갔다” 뒤숭숭

한나라당은 정치권의 입김 때문에 경찰 인사가 엉망이 되었다고 몰아가고 있다. ‘현정권 들어 경찰 인사를 여권 실세 ㄱ씨가 좌우해, 그의 인맥인 ‘ㄱ마피아’가 경찰을 장악해 왔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ㄱ의원’으로 알려진 김옥두 총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찰 인사에 개입한 일은 없었다. 박금성 청장이 사표 낸 줄도 몰랐다”라고 해명했다. 박청장은 지난해 김의원의 부인에게 월 75만원씩 불입하는 보험에 들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여권은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박총장의 사표를 신속하게 수리하고 공석인 서울경찰청장에 12월11일 이팔호 경찰대학장을 내정했다. 경찰의 한 간부는 “경찰이 힘들게 이루어 놓은 경찰 개혁이 이번 사건으로 완전히 망쳐졌다”라며 뒤숭숭한 경찰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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