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준비, 일본에 참패"
  • 김종민 기자 ()
  • 승인 2000.11.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야 의원, 국감에서 지적…외국 선수 훈련용 캠프·숙박시설 한참 뒤져
난 10월30일 막을 내린 2000 아시안컵 대회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지만, 일본 축구가 한국 축구를 추월해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축구 실력만이 아니다. 2002 월드컵 준비 상황에서도 한국이 공동 개최국인 일본에 뒤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따졌다.


“축구도 뒤지면서 이래서야"

특히 월드컵 조직위원회 홈페이지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등 월드컵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민주당 심재권 의원은 “전체적인 준비 상황을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의 경우 경기장 건설에 급급해 그 밖의 준비는 일본에 비해 매우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라며 우려했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에서 문제로 지적된 것은 월드컵 캠프와 숙박시설이다. 월드컵 캠프는 각국 선수단이 경기 시작 전부터 한달 가량 머무르면서 훈련하는 곳으로, 공식 경기장 다음으로 중요한 시설. 월드컵 캠프가 설치된 도시에는 입주한 선수단을 보기 위해 국내외 취재진은 물론 해당국의 응원단과 관광객이 몰리기 때문에 캠프 유치는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해당 도시를 세계에 홍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 특히 캠프를 어디로 정하느냐는 전적으로 참가국 선수단의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한·일 양국의 각 도시는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개최 도시들이 경기장 건설 일정조차도 빠듯해 캠프 준비 및 유치 활동에는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이미 1년 전부터 각 지자체에서 1도시 1국 유치 작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에 84개 도시가 후보지 신청을 했고, 그 중 상당수는 벌써부터 본선 참가 예상국들에 활발한 유치 활동까지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우리와 시의 경우 스페인 대표팀 감독을 초청해 가계약을 맺었고, 아키타 시는 포르투갈팀, 야마가타 현은 브라질팀, 군마 현은 독일팀, 니가타 현은 이탈리아팀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유치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숙박시설도 골칫거리다. 월드컵 기간에 필요한 숙박시설은 14만 실. 우리나라의 경우 관광호텔급 이상은 4만5천 실에 불과해 9만5천 실을 더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국은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기존 장급 여관 가운데 일부를 월드컵 지정 숙박시설로 선정해 시설 개·보수 자금을 저리로 융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심의원이 현장을 실사한 바에 따르면, 대상 여관들 중에 차량 번호판 가리개가 있는 이른바 러브 호텔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또 이들 여관은 정부의 지원금을 대부분 자동 통역 시스템이나 원스톱 서비스 통신 시설 등을 갖추는 데 쓰기보다는 인테리어 개·보수에 쓸 예정이어서 정부 예산이 러브 호텔 고급화에 잘못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심의원은 “월드컵 기간 한 달만 버티자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월드컵을 계기로 관광 인프라를 확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올 봄 일본의 월드컵 개최 도시 10여 개 지역을 돌며 현지 준비 상황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애니비전 프로덕션 박상기 대표는 “오이타와 오사카에서는 자원 봉사하는 주부들이 월드컵을 의식해 벌써부터 한국어·영어·스페인어 등을 반별로 나누어 익히고 있다”라면서, 정부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우리의 월드컵 준비 상황이 일본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라운드 성적도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그라운드 밖의 성적마저 비관적이라면 2002 월드컵이 우리에게 꿈의 제전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