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에 햇볕이 보인다
  • 신지호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원 수석연구원 ()
  • 승인 2000.11.0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셈 ‘서울 선언’, 북·미 관계 진전으로 새 전기 맞아… 서방 움직임과 보조 맞출 필요
최근 들어 서방 국가와 북한과의 관계가 급류를 타고 있다. 지난 10월20∼21일 서울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서 26개국 지도자들은 남북간, 북·미간 대화 지지와 아셈 회원국의 대북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하는 ‘한반도 평화에 관한 서울 선언’을 채택했다.

뿐만 아니다. 10월23일에는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사상 처음 직항편을 통해 평양으로 날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의 최고위층과 양국간 관계 개선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올브라이트의 방북 결과에 따라 클린턴 대통령의 11월 방북 여부도 결정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흐름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를 위한 충분 조건이 성숙되어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 냉전 구조가 해체되기 위해서는 물론 남북한 간에 화해가 이루어지고 적대 관계가 청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불충분하다. 민족 문제이면서 국제 문제이기도 한 한반도 분단 및 통일 문제의 속성상, 한반도 냉전 구조를 완전히 해체하려면 남북 화해와 더불어 북한과 서방 세계, 특히 미국·일본과의 관계 정상화가 필수이다. 요컨대 남북 화해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의 필요 조건이라면, 미국·일본과 북한의 관계 정상화는 충분 조건이라 할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는 급진전하고 있는 데 비해 미·일과 북한의 관계 개선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어,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 움직임은 안정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특히 김영남의 유엔 정상회담 참가 무산은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월 초 조명록의 워싱턴 방문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북·미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함으로써 남북 관계에만 한정되어 있던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 흐름의 외연을 동북아시아 전체로 확장할 수 있는 일대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또 다른 통미봉남 시작’은 잘못된 시각

만약 11월에 클린턴과 김정일의 정상회담이 성사되어 미사일 문제와 외교공관 설치에 긍정적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북·미 정상회담은 머지 않아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강력한 촉진 요인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냉전 구조라는 한반도 구질서 해체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번 아셈 회의에서 유럽 주요국들의 대북 수교 방침을 밝힌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의 국제적 기반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한국의 바른 대응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우방국들의 대북 관계 개선을 대환영하고 적극 보조를 맞추어야 할 것이다. 최근의 북·미 접근 및 남북 대화의 일시적 지연을 또 다른 통미봉남(通美封南)이 시작되었다고 해석하고 경계하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다. 기본적으로 북한 문제 해결에서 한·미·일 3국의 관계는 경쟁이 아닌 협력이다. 북한 역시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미봉남 정책을 버리고 남북 관계 개선과 북·미, 북·일 관계 개선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새로운 통미봉남에 대한 우려는 내년 봄 제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로 말끔히 해소될 것이다.

현재는 필요 조건과 충분 조건의 불균형을 조정하는 국면이다. 미·일의 대북 관계 개선 속도가 빨라지면서 남북 대화가 일시적 휴지기에 들어서는 것은 우리 내부를 정비하기 위해서도 나쁠 것 없다. 이른바 ‘대북 속도조절론’은 바로 새로운 통미봉남을 우려하는 세력의 주장이 아니었던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