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포기 대가로 일본이 10억 달러 지원”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0.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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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록 방미 때 미국측과 극비 협의한 듯
지난 10월9∼12일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 1부위원장의 방미 외교는 지난 9월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할 경우 북·미 양측이 추진하려 했던 ‘관계 개선 시나리오’를 부활시켰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지난 7월 아세안안보포럼(ARF)에서 사상 최초로 외무장관 회담을 열면서 관계 개선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북·미 양측은 그동안 미사일 문제와 테러국 지정 해제 문제를 놓고 다각적으로 접촉해 왔다.

지난 7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미국이 인공위성을 대신 쏘아주면 로켓 개발을 포기하겠다”라고 한 발언 역시 북한·미국·러시아 3국 간의 물밑 접촉 결과에 근거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최근 미국측이 김위원장의 당시 제안은 결코 농담이 아니라고 해명한 데서도 밝혀지고 있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8월 한국 언론사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미국이 테러국 고깔만 벗겨주면 당장이라도 수교할 수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을 전후해 마이클 시헌 미국 국무부 테러 담당 대사가 평양을 방문해 테러국 지정 해제에 대한 양측 입장을 협의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일본에 들러 회담 결과를 일본측에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물밑 접촉을 통해 미사일과 테러국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한 뒤 9월 밀레니엄 정상회담에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참석하는 것을 계기로 양국 고위급 회담에서 포괄적으로 타결하겠다는 구상이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같은 포괄 협상을 통해 양국간 현안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외무장관 회담을 열어 외교 관계 수립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즉 백남순 북한 외무상이 미국을 방문하든지 아니면 제3국에서 올브라이트 장관을 만나 수교 문제를 비롯한 양국 관계 정상화 문제를 협의하고 이를 대외에 천명한다는 것이었다.

<시사저널>이 그동안 몇 차례 보도해온 ‘10월 북·미 수교설’ 역시 이같은 물밑 시나리오에 입각한 것이었다. 당시 워싱턴과 도쿄 등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미 관계가 이 시나리오대로 순조롭게 풀릴 경우 김정일 위원장이 11월 미국 대선을 전후해 미국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미국측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고위 인사가 북한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여러 경로에서 나왔다.

이 모든 시나리오의 출발점이었던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미국 방문이 좌절된 이후 한동안 조정기에 들어갔던 북·미 양측이 김위원장보다 권력 실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조명록 부위원장 방미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물밑에서 거론되어 왔던 각각의 일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즉 미사일 문제 해결과 테러국 지정 해제, 연락사무소 설치 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양국간 수교 가능성 등이 조부위원장 방미를 전후해 무성하게 떠올랐다.

또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본인이 임기 내에 북한 방문을 희망한다고 발언한 데 이어 지난 10월9일 김대중 대통령 역시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을 교차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그동안 물밑에서 떠돌던 미국 고위급 인사의 북한 방문 역시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이 이루어질 경우 이것을 기점으로 북·미 관계는 수교 관계로 진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교 문제를 처리할 권한을 바로 국무장관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이 마치 의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일부에서는 백남순 외무상이 현재 비상 대기중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북한은 이번에 미국이 테러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할 경우 백남순 외무상을 미국이 요구하는 장소로 보내 관계 개선 협의를 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측에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조명록 부위원장 방미는 김영남 방미 때 추진하려고 했던 ‘관계 개선 시나리오’의 부활이라는 점뿐 아니라 그가 군부 실세이자 미사일 책임자라는 점에서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의 특사로 조명록 부위원장을 보냈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 미사일 문제를 미국과 깨끗하게 담판하겠다는 의지를 엿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이 일정한 보답만 해주면 미사일 개발을 깨끗이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측이 내놓을 선물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언급된 바로는 북한을 테러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북한의 인공위성을 미국이 대신 발사해 주는 것 정도이다. 과연 이 정도에서 북한 군부가 만족할 수 있을까. 미사일 수출 대금은 그동안 북한 군부가 운영하는 ‘군사 경제(제2 경제)’의 주요 자금원 구실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북한측은 미국과의 미사일 협상에서 미사일 수출을 포기하는 대신 매년 10억 달러씩, 3년간 30억 달러를 보상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 들어서는 이런 얘기가 쏙 들어갔다.

국내의 한 정보 소식통은 이와 같은 의문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만한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즉 이번 조명록 방미 때 “북한이 미사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이 10억 달러를 제공하는 문제가 양측 간에 극비리에 매듭지어질 예정이며, 이 10억 달러의 출처는 바로 일본이다”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금 지급 방식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즉 일본이 아시아의 친미 국가들에 원조 자금을 지급할 때 여기에 끼워서 이 돈을 지급하면 미국이 이를 모아서 북한에 전달하는 방식이 되리라는 것이다. 즉 대내외적인 명분상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이 돈을 북한에 지급하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측 채널을 통해 돈 세탁을 한 뒤 북한에 흘러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이 그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은 이번에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니다. 북한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 군부에 이를 대체할 만한 수입원을 제공해야 하고, 이 자금이 나올 만한 곳은 일본과 이스라엘밖에 없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거론되어온 얘기다. 특히 북한 미사일에 대한 본격적인 해법이 모색된 지난해 9월 베를린 북·미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이 이 문제를 깊이 논의했고, 그 뒤 일본측으로부터 20억 달러를 부담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번 조부위원장 방미는 ‘북한이 미사일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이 자금을 지원하는’ 미사일 문제에 대한 그동안의 해법을 북·미 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절차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이번에 언급된 10억 달러가 북한에 지급될 총액인지 아니면 올 한 해 분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이런 맥락에서 조부위원장 방미 문제를 되짚어 볼 경우, 앞으로 북·미 관계뿐 아니라 북·일 관계 역시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본이 미사일 대금을 대신 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 역시 북·일 수교를 더 이상 붙잡아 둘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모리 요시로 총리가 김정일 위원장과의 북·일 정상회담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0월8일 이북도민 체육대회에 참석해 “조명록 부위원장 방미로 북·미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본도 머지 않아 북한과 관계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우리 정부 수뇌부 역시 그 내막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북·일 수교 전망에 대해 앞의 정보 소식통은 “빠르면 올해 12월,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마지막 해인 올해 안에 남북 관계, 북·미 관계, 북·일 관계가 모두 정상화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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