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미소에 매향리는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0.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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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7일 주한 미국 공군 51전투비행단은 경기도 평택시 신장동 미국공군비행장(오산비행장)에서 ‘한국 주민들을 위한 기지 무료 개방 행사’를 했다. 미군측은 A 10·F 16·U 2 등 지금까지 공개하기를 꺼렸던 항공기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또한 행사에 아시아태평양 미국 공군 군악대를 동원했고, 음식 및 음료수 판매대를 설치해 주민들에게 먹거리도 제공했다. 미국 공군이 이렇게 이례적인 행사를 가진 의도는 한국민과의 돈독한 ‘친선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미국 공군의 이런 목적은 초청 대상자 선정에서도 드러났다. 미군은 전투비행 연습의 가장 큰 피해 자인 매향리 주민을 초청할 계획이었다. 오산기지에서 출발한 A 10기가 폭격 연습을 하는 곳이 다름 아닌 매향리 쿠니 사격장이다.매향 1~5리, 석천리 이장과 부녀회장 등 30여 명이 초청 대상이었다.

하지만 매향리 지역 주민들은 이날 행사에 3∼4명만 참석했다. 미국 공군이 매향리 주민이라고 소개한 사람 대부분은 피해 지역인 매향리와 관계가 없는 우정면 소재지의 다른 지역 주민이었다.

매향리 주민은 이날 오산기지 대신 서울역에서 열린 ‘미국 반대 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했다. 매향리피해대책위원회 전만규 위원장(44)은 “부대 방문 행사와 같은 이벤트로 매향리 주민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라고 말했다.

10월7일 오산비행장과 서울역. 두 곳의 거리는 불평등한 한·미 관계 개선을 바라보는 한국민과 미군의 시각차만큼이나 멀어 보였다. 10월 말께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행정협정 개정 협상 때 미국의 자세에 따라 이 거리는 가까워질 수도, 더 멀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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