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 경보… 치사율 낮아도 방심 금물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0.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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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화하면 '국가재난'…"이상 고온이 원인" 주장도
국립보건원이 경기도와 강원 북부 지방을 대상으로 ‘말라리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인구 10만명당 10명 이상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한 13개 시·군·구를 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100명 이상 발생한 36개 읍·면·동을 ‘고위험지역’으로 지정해 특별 관리하기로 했다(표 참조). 위험지역에는 진단 키트와 치료 약품을 공급하고, 특히 고위험지역에서는 축사 등 모기가 서식할 만한 곳을 중심으로 방제 활동을 한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매개로 한 기생충성 여름철 전염병인데, 감염될 경우 고열과 오한 증상을 보인다. 증상은 보통 감염된 후 14일 만에 나타나는데, 국내 말라리아는 잠복기가 10~30개월로 매우 길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여름에 모기에 물린 사람이 다음해 봄에 말라리아 증상을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병하는 말라리아는 치사율이 거의 0%에 가깝다. 열대열 말라리아와는 다른 삼일열(三日熱) 말라리아이기 때문에 1993년 이후 수천명이 감염되었지만 사망자는 1명도 없다. 국내 말라리아 환자는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다가도 치료를 받으면 금세 회복했다. 삼일열 말라리아도 영양 섭취나 환자의 몸 상태에 따라 치명적일 수 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나라는 건강·영양 상태가 선진국 수준이어서 열대열 말라리아가 아니라면 국내에서 감염될 경우에는 겁낼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 고원규 교수(인제의대·기생충학교실)의 설명이다.

또 삼일열 말라리아는 빨리 전파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삼일열 말라리아의 매개 모기는 주로 중국얼룩날개 모기인데, 이 모기는 열대열 말라리아 매개 모기보다 전파력이 크지 않다. 고원규 교수는 “열대 지방 모기는 사람의 피를 좋아하는 반면, 중국얼룩날개 모기는 사람보다 동물의 피를 좋아한다. 따라서 사람의 피를 빨아 말라리아를 전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밤 10시~오전 2시 특히 조심해야

사라졌던 말라리아가 최근 몇 년 사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원인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북한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 북한에서 말라리아가 발병하고 있다는 공식 발표는 없지만, 북한은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에 10만명분의 말라리아 치료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립보건원은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고온과 생태계 변화가 말라리아 유행을 다시 불러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말라리아의 치사율이 높지 않지만 소아 환자·노약자·임산부는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경우 몸살 감기처럼 앓다가 치료하지 않을 경우 심한 빈혈로 사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말라리아를 예방하려면 모기에게 물리지 않아야 한다. 특히 말라리아 모기는 주로 밤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 활동하므로 이 시간에 외출할 경우 긴소매 옷을 입는 등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방역 당국은 조언했다.
그런데도 국립보건원이 일부 지역에서 말라리아와의 전쟁을 선포한 까닭은 말라리아 토착화를 조기에 근절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사라졌던 말라리아 환자가 1993년을 기점으로 하여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군인 1천84명, 민간인 1천5백41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되었고, 올해에도 41명이 발병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조금이라도 방심할 경우 자칫 말라리아가 토착화할 우려가 높다. 그럴 경우 말라리아의 약제 내성이 강해져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발병 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어 ‘이미 토착화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 국립보건원의 입장이다. 최철호 서기관(국립보건원 방역과)은 “이제까지 2차 감염자가 단 한 사람도 발생하지 않았고, 발병 지역이 휴전선 일대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에는 말라리아가 토착화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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