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래, '썬앤문 게이트' 도화선 되나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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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김성래씨의 ‘또 다른 정치 자금’ 포착…문병욱과의 ‘진실 게임’ 점입가경
썬앤문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 조사가 진행되던 2002년 초, 썬앤문그룹 전 부회장 김성래씨는 서울지방국세청 4국 직원들이 세무 조사를 하는 사무실로 매일 출퇴근했다. ‘성실성’이 워낙 두드러져 나중에는 조사하는 국세청 직원들이 ‘누님’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김씨의 친화력은 남달랐다.

김씨는 검찰 직원들도 놀라게 했다. 김씨가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김씨의 측근이던 이 아무개씨가 과거 연루되었던 사건과 현재 자신의 사건에서 이씨의 역할을 비교·분석해 그를 공격하는 표가 들어 있다. 이를 본 검찰 관계자들은 “김씨의 분석력이 수사관 뺨친다”라며 그 정교함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썬앤문 사건’의 핵심은 2002년 국세청 특별 세무 조사 때 애초 1백80억원이던 세금이 왜 23억원으로 줄어들었나 하는 점이다. 김씨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의 말에 따라 김씨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감세 청탁 로비’ 자체를 부인하는 문씨가 로비를 시인한다면, 김씨의 숨겨진 역할에 대해서도 입을 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성래와 문병욱은 여러 모로 ‘특별한 관계’

검찰은 이미 김성래씨가 여야 정치권에 상당한 자금을 제공한 흔적을 포착했다. 김씨는 단순 정치 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은 감세 청탁과 관련한 대가성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정치권 인사에게 제공한 정치 자금 가운데 아직 공개되지 않은 또 다른 뭉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12월 초 김씨를 특별 면회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김씨에 대해 “전형적인 로비스트이다”라고 평했다. 여러 차례 검찰을 들락거린 경험이 있는 김씨가 자기한테 불리한 내용은 절대 말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홍의원은 “도와주겠다”라며 김씨의 입이 열리기를 기대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진작부터 ‘너른 발’이 될 싹이 보였다. 김씨가 언론사에 낸 이력서에는 1987년 민주자유당 충남 금산 지구당위원장을 지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는 민자당이 존재하지도 않을 때이고, 김씨가 지구당위원장을 지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김씨가 아니라 남편(현재 이혼한 상태다) 장 아무개씨가 1987년 충남 금산에서 민정당 지구당위원장을 지냈다. 일찍부터 새마을운동을 하고 새마을연수원 교수를 지낸 장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씨의 전폭적인 후원에 힘입어 정계에 진출했는데, 전경환씨가 장씨 집에서 자고 갔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은 각별했다.

김씨는 남편이 지구당위원장으로 있을 때도 열성이 지나쳤다. 금산 지역 한 관계자에 따르면, 금산에서 삼성생명 보험 영업을 하던 그녀는 발이 너르고 수단이 좋아 뛰어난 청약 실적을 올리면서 대전으로 발탁되었다고 한다. 1987년 4월 삼성생명 대전 성일영업소 소장으로 있을 때, 김씨는 고객 예탁금 5억원을 빼돌려 남편의 국회의원 선거운동 자금으로 쓰려다가 구속된 적이 있다.

이 사건 이후 금산을 떠나 서울로 간 김씨는 1997년 장애인복지재단 이사장으로 부활했다. 2000년에는 음료 회사인 이건와이에치와 보나건설 대표를 맡아 ‘여성 기업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2002년에는 금융 회사인 늘조은금융프라자와 보나뱅크 회장을 맡았다. 썬앤문그룹 부회장이 된 것도 그때였다. 2003년에는 계몽사를 인수해 공동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주목되었다.

김씨는 문씨가 경기도 이천에 있는 미란다 호텔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사채업자 김 아무개씨 소개로 문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관계’였던 것 같다. 문씨가 김씨에게 100억원을 빌려줄 정도였고, 인간적으로도 가깝게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가 문씨 소유인 양평 TPC 골프장 회원권을 담보로 농협에서 1백15억원을 대출받자 참다 못한 문씨는 2003년 3월21일 김씨를 검찰에 고발해 구속시켰다.
김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문씨가 전 동두천시장과 서울지방국세청 감사관에게 로비한 사실을 공개해 구속되게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애초 단순한 고소·고발 사건을 김씨가 ‘감세 청탁 로비’로 물줄기를 바꾸면서 ‘썬앤문 사건’은 정·관계에 메가톤급 폭풍을 몰고온 ‘게이트’가 것이다.

두 사람은 이처럼 ‘앙숙’ 관계였으나 공멸을 우려해 최근 화해를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장 심규철 의원은 “검찰이 두 사람의 화해를 주선하고 있다는 말이 있어 곧 김씨를 만나 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와 여러 번 만난 한 정치권 인사에 따르면, 그녀는 늘 비싼 옷에 벤츠·캐딜락·에쿠우스 같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건설회사 등 여러 사업체를 운영한다며 뻐겼고, 김대중 정권 때 실세들 이름을 거명하며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자랑했다는 것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 3일 전 김씨로부터 천만원을 수표로 받았다가 지난 9월 되돌려준 한나라당 양경자 도봉 갑 지구당위원장은 김씨를 ‘사람을 많이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씨가 양위원장을 ‘언니’라고 부르며 누구 누구를 소개해 달라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김씨가 주로 한나라당과 구여권 쪽을 맡고, 문씨가 노무현 대통령 쪽에 대한 로비를 맡았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김씨가 노대통령 쪽과 별다른 줄이 없는 반면 문씨는 노대통령의 부산상고 4년 후배이기 때문이다.

반면 김씨는 한나라당 서청원 의원과 함께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을 다녔고 동기회장을 맡는 등 활발히 움직였다. 평소 구여권 실세들과 친분이 있다고 과시했으며, 한나라당 원외 지구당위원장 여럿에게 자금을 지원한 흔적도 검찰에 포착되었다. 검찰 출신으로 장관을 지낸 한 인사가 구여권과 김씨를 이어준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 9월 재판부에 낸 탄원서에서 “2002년 12월3일 한나라당 정치 자금 모금 행사에 참여해 한인옥씨를 한 시간쯤 면담했다”라고 주장했다. 한씨측은 “김씨를 개인적으로 만난 일이 없고 알지도 못한다”라고 부인했다. 양경자 위원장은 “김씨가 사건을 정치적으로 몰고 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결국 폭탄은 노대통령 쪽과 구여권 쪽에서 터질 것이라며, 특검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선 전 김씨는 한나라당과 선이 닿는 한 재계 인사에게 한나라당을 후원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중에 김씨는 ‘문회장이 노후보를 후원하고 있다’며 말을 바꾸었다고 한다. 썬앤문그룹 전 부회장 김성래씨와 현 회장 문병욱씨의 진실 게임이 날로 흥미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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