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선언 종착역은 경의선 복원?
  • 南文熙 기자 ()
  • 승인 2000.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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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의 주요 골자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를 당국간 경협 수준으로 확대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북한의 도로 항만 철도 전력 통신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 △투자 보장 협정과 이중과세 방지 협정 등 투자 환경 조성 △식량난 해결을 위한 근본적 농업 개혁 등이 당국간 경협의 주요 대상이다.

또 하나는 대화의 한 방식으로 특사 교환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이밖에 이산 가족 문제 등을 언급했으나 과거에 비해 비중이 약해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결국 베를린 선언은 ‘남북 경협을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확충 문제로 격상하고,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특사를 교환하자’ 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이 극적인 형식으로 표출되기까지는 지난해 말부터 정부 외교 안보 당국자들이 구상해온 신대북 정책과 그 이후의 숙성 과정 및 최근의 촉발 요인 등이 존재했다.

우선 구상 단계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11월을 전후해 정부의 외교 안보 당국자 사이에 신대북 정책 구상이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남북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이다. 비전향 장기수 무조건 북송 계획이 검토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이다. 4월 총선이라는 변수 때문에 장기수 북송이 일단 연기된 이후에는 자연스레 총선 이후를 겨냥한 정책 구상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구상의 내용은 남북경협의 대대적 확대, 즉 민간 기업 차원에서 일군 성과를 바탕으로 이를 당국간 대화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어떤 내용을 채워 넣을지는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에 이 구상을 숙성시킬 요인들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그동안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이나 중국·러시아 쪽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종합한 결과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문제를 더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특히 북한측이 남한의 기업인이나 민간단체 등에 전력·수송 등 인프라 투자를 요청하는 사례가 빈발하면서 당국간 대화의 매개 고리가 분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북한, 현대에 경의선 복원 제안

국내 대북 사업을 선도하는 현대그룹이 어떤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와 관련해 재계 소식통이 전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대그룹 대북 사업의 실무 총책임자인 김윤규 현대 아산 사장이 올 상반기 두 차례에 걸쳐 북측과 접촉했다. 지난 2월11일 금강산 방문 때와 2월26~27일 베이징 방문 때이다. 북한측 파트너는 두 차례 다 ‘조선아태평화위’ 강종훈 서기장이다. 그동안 언론은 현대가 추진하는 서해공단 후보지 문제와 정주영 명예회장의 3월 방북 등이 주로 논의된 것으로 보도해 왔으나, 재계 소식통의 정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당시 북한측은 서울-신의주간 경의선을 복원할 의사가 있다면서, 현대에 이 사업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현대와 북한 사이에 어느 정도 깊숙한 얘기가 오갔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최근 베이징 소식통들 사이에 ‘현대와 북한이 경의선 복원에 대한 투자 의향서를 체결한 것 아니냐’는 미확인 정보가 흘러 다닌다는 점을 감안하면 꽤 구체적인 대화가 이루어진 것 같다.

북측의 제안에 대해 현대는 ‘이 문제는 현대 혼자만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다. 당국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북측도 일정 부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북측과 접촉한 결과를 현대측이 정부 고위 당국자에게 전달했고, 정부측이 종합 검토한 끝에 ‘베를린 선언’이라는 포괄적 형식으로 ‘역제안’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의 취재 요청에 대해 현대 아산 김윤규 사장은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돌아오기 전에는 어떤 얘기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정부 고위 당국자는 “투자 의향서를 체결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지만, 북측이 현대에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덧붙여 “경의선 복원은 엄청난 비용 부담 때문에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통령이 현대하고만 얘기할 것이 아니라 남북 당국이 만나서 이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자고 제안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사실 경의선 복원 문제는 북한 내부 흐름으로 보아 언제든 불거져 나올 수 있는 의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실마리를 제시한 것은 바로 1994년 6월30일 김일성 주석의 ‘벨지크(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장과의 담화’이다(<김일성 저작집> 44권 471쪽) 그는 이 담화에서 “신의주와 개성 사이의 철길을 한 선 더 건설해 남조선으로 들어가는 중국 상품을 날라다 주기만 해도 1년에 4억 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 다시 말해 경의선 복원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 사업인 셈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서해공단 조성 사업에 대해 현대가 남포·해주안을, 북한이 신의주안을 각각 제시해놓은 상태인데, 경의선 복원은 바로 신의주 공단을 관철하기 위한 북측의 중요한 카드일 가능성이 있다. 현대가 신의주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수송망 미비인데, 경의선이 복원되기만 하면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신의주 공단에 대한 북한의 집념은 지난 1월25∼28일 김정일 총비서가 이 지역에 대한 현지 지도에서 ‘새로운 발전소 건설’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왜 특사 교환인가. 베를린 선언을 촉발한 요인으로 외생 변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일어난 가장 극적인 사건은 지난 3월5일 김정일 총비서가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을 전격 방문한 사건이다. 그 배경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면의 정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즉 김정일 총비서의 중국대사관 전격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이미 지난해 4월에도 비밀리에 이루어진 적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북한 소식통은 이같은 비공개 정보를 밝히면서, 당시 김총비서의 중국대사관 방문은 5월의 윌리엄 페리 한반도 조정관 방북과 6월의 김영남 북한 최고위 상임위원장의 중국 방문 직전에 이루어졌고, 이런 일련의 흐름의 신호탄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미 관계 진전을 앞둔 사전 조율 성격을 띠는 것으로, 철저한 등거리 외교인 셈이다.

이번 경우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현재 미·북한간 최대 현안은 바로 당시 이루어진 ‘페리 특사 방북’에 대한 북한측 특사의 답방 문제이다. 특히 올 들어 미국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투자단 방북 문제나 북·일 국교 정상화 회담 등을 북한 특사의 방미와 연동하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북측으로서도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아직 현안으로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북·일 간에도 북한 특사의 답방 문제가 걸려 있다. 지난번 무라야마 방북단 일원으로 북에 갔던 노나카 히로무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사실상 오부치 총리의 특사였고, 당시 노나카 역시 김용순 비서의 일본 방문을 초청해둔 상태이다. 다시 말해 김총비서는 이번에도 대미·대일 관계 현안을 앞두고 중국대사관 방문이라는 극적 형식을 통해 등거리 외교를 시도한 것이며, 지난 2월9일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 방북 및 3월 중순 백남순 북한 외교부장의 방중과 더불어 한반도에 ‘특사 외교 시대’가 개막했음을 선언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김대통령이 이 시점에 북한에 특사 교환을 촉구한 까닭은 분명하다. 북한 특사의 미·일 방문을 앞두고 남쪽과도 특사 외교를 시작하자는 메시지이다. 사실 남북은 이미 특사 외교에 대해 운을 뗀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정주영 명예회장과의 면담 때 김정일 총비서가 김용순 비서에게 적절한 시점에 서울을 방문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김총비서가 언급한 적절한 시점이란 바로 서해공단사업의 윤곽이 드러나는 시점을 의미한다. 김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에서 북한 사회간접자본 문제와 특사 교환을 패키지로 제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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