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 ''33년 만의 귀국'' 왜 무산되었나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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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요구에 33년 만의 귀향 또다시 포기…8·15 때 재추진될 듯
기자가 송두율 교수(56·독일 뮌스터 대학·사회학)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5월1일 뉴욕에서 열린 ‘세계 한민족 포럼’에서였다. 인터뷰를 약속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그의 방을 찾았을 때 그는 매우 낙담한 표정이었다. 그와 황장엽씨 간에 진행 중인 명예훼손 관련 결심 공판이 5월4일 열리기로 했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6월15일로 연기되었다는 것이다. 그로서는 낙담할 이유가 있었다(결심 공판은 그 뒤 7월20일로 또다시 연기되었다).

당시 그는 ‘전남대 5·18 연구소‘로부터 초청장을 받아 둔 상태였다. ‘광주항쟁 20주년 기념 국제 학술대회’에 발제자로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법원에서 모든 게 명백해지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33년 만에 귀향길에 오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예상한 대로 그는 5·18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국정원측이 예의 ‘준법 서약서’를 요구했고, 그것을 다시 거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8·15 때도 한 재야단체가 그를 초청했지만 그때도 준법서약서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사)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통일맞이)측이 송교수를 올해의 늦봄통일상 수상자로 결정한 것은 지난 5월25일이었다. ‘통일맞이’측은 5년째 늦봄통일상 수상식을 개최해 왔는데 올해는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와 함께 송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6월1일로 잡혀 있던 수상식을 7월4일로 연기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통일맞이’측이나 국내의 학계 정계 및 재야단체 인사들은 이번만은 그가 준법서약서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의 귀국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나 국정원이 과거에 비해 유연한 태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6월19일 ‘통일맞이’ 측은 ‘송두율 교수의 조건 없는 귀국을 위한 건의서’를 청와대에 접수시켰고, 7월1일에는 이창복 이사(민주당 국회의원)가 임동원 국정원장을 면담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임원장은 ‘국정원에서 조사받는 조건으로 입국이 가능하도록 검토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일부 언론 때문에 무산

그런데 급추진되던 송교수 귀국은 비행기 탑승 5시간을 앞두고 갑자기 취소되고 말았다. 왜 갑자기 사태가 반전되었을까. ‘통일맞이’에 따르면, 국정원장 면담 직후인 7월2∼3일 국정원 실무자들과 실무 협상이 벌어졌는데, 특히 7월3일 들어서 국정원이 입장을 바꾸어 또다시 준법서약서를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내부 실무자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7월3일 한나라당 총재단회의가 그의 귀국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또한 <조선일보>가 그의 귀국을 비판하는 사설을 실은 후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송교수는 준법서약서라는 종이 한 장만 써내면 그 이전에 얼마든지 귀국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중반 그의 부친이 사망했는데 그 때도 이 종이쪽지 한 장 때문에 임종하지 못했다. 당시 부친이 ‘나 때문에 양심을 굽히지 말라’고 유언하자 그는 유언을 지켰다.

그는 왜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그는 ‘내가 왜 준법서약서를 써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준법서약서는 현행법 취지상 ‘형이 확정된 재소자들의 가석방을 담보로 집행되는’ 일종의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에서 한 번도 형을 산 적도 , 기소당한 적도 없는 송교수에게 이를 요구할 법적 근거를 찾기는 매우 힘들다. 국정원은 그가 해외에서 ‘반국가 활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기준이라면 당시 반정부 민주화 투쟁을 했던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 역시 준법서약서를 써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싸다가 또다시 귀국길이 좌절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송교수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꿈결에 벌써 다녀온 것 같다. 어느 땐가는 갈 수 있지 않겠나. 희망을 잃지 않겠다”라며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의 귀환을 추진해온 국내 인사들은 올해 8·15 때 다시 한번 시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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