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인사, 무늬는 ‘세대교체’ 알맹이는 조직장악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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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박순용 ‘친정 체제’ 구축… 고도의 정치적·지역적 안배 드러내
현충일에 기습 단행된 검찰 고위직 인사로 검찰 조직이 충격에 휩싸여 있다. 이번 인사는 검찰 사상 가장 큰 폭인 데다 규모를 볼 때 뒤이을 중견 간부급 후속 인사도 대폭적인 세대 교체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이번 검찰 간부 인사는 사시 8회 출신인 박순용 검찰총장의 지휘권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동기생 7명을 전원 용퇴시켰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즉 박총장 동기생인 지방 검사장 일부가 사표 제출을 거부하는 등 인사 진통이 계속되던 차에 청와대와 김태정 법무부장관이 검찰 조직 장악을 위해 8회 전원 퇴진 및 대대적인 세대 교체라는 카드를 전격적으로 빼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당초 제기되었던 조직 안정 논리는 뒤로 밀려났고,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39명 전원을 교체하는 기록을 수립했다. 인사 내용에서도 그동안 검찰 조직의 관행이던 서열 개념이 파기되었다. 고등검사장 자리 8개에 사시 9~10회 출신이 순서대로 포진하리라던 예상을 깨고 11회 3명이 선배를 밀어내고 본의 아니게 승진했다. 현정부 들어 검찰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이명재 대검 중수부장·진형구 대검 공안부장·김경한 법무부 교정국장이 각각 부산·대전 고검장 및 법무 차관으로 발탁 승진된 대목이 그것이다.

이처럼 파격적인 검찰 인사에는 김태정 법무부장관과 박순용 검찰총장 라인의 강력한 ‘친정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대중 정부의 집권 2기 사정 작업 및 내년 총선 구도와 맞물리면서 검찰 조직을 친정 체제로 변화시키려는 흔적은 서울 지역의 주요 검찰 보직에서 잘 드러난다.

우선 검찰 2인자인 대검 차장에는 사시 9회인 목포 출신 신승남 법무부 검찰국장이 발탁되었다. 또 검사장급 인사에서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서울지검장에는 호남 출신으로 사시 12회인 임휘윤 대검 강력부장이 전격 기용되었다. 임휘윤 신임 서울지검장은 김태정 장관이 그동안 주도해온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 운동’의 실무를 총괄 지휘했다는 점에서 발탁 배경이 주목된다.

서울지검장은 호남, 중수부장은 PK

친정 체제 구축 구도와 더불어 관심을 끄는 점은 주요 보직 배정에 고도의 정치적·지역적 안배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총장과 차장을 ‘TK·호남’의 지역 안배 구도로 짠 뒤 서울지검장에 호남, 대검 중수부장에 PK 출신인 사시 12회 이종찬 전주지검장을 기용했다. 또 내년 총선 관리와 관련해 역할이 주목되는 대검 공안부장에는 대전 출신 김각영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임명했다.그밖에 부산·대구·수원·인천·대전 등 일선 지검장은 사시 10회에서부터 15회까지 무려 6개 기수 선후배가 포진하는 전례 없는 구도로 짜였다. 이런 구도에 대해 법무부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조직의 개혁과 검찰 내의 고질적 문제인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철저히 능력 위주로 이루어졌다”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견 간부급 후속 인사도 세대 교체를 염두에 두고 파격적으로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조직 전체가 충격에 휩싸인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현재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이다. 앞으로 능력 위주로 파격 인사를 단행하는 구도가 정착되는 데 기대를 거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경륜 있는 선배들이 일시에 물러남으로써 위계 질서를 생명으로 삼아온 검찰 조직의 정체성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쪽도 꽤 있다. 특히 중·하위급 검찰 인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일선 검사들은 대체적으로 좌불안석이다.

1백13개 단체, 장관 퇴진 요구

세대 교체와 물갈이를 기치로 내걸고 새로 구축한 친정 체제가 풀어야 할 숙제는 산 넘어 산이다. 무엇보다 대전 법조 비리에 이어 장관 부인의 고가 옷 로비 사건 의혹에 시달리면서 검찰 조직 전체가 침체한 상황에서 ‘인사 충격’카드가 나왔다.

조직을 추스르기 위한 목적으로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 누구를 자를 수 있단 말인가’하는 식의 김태정 장관 체제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인사 충격만으로 조직을 장악하려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파격적인 검찰 인사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민 단체들은 김장관 퇴진을 더욱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6월7일 아침, 경실련·참여연대·민주노총 등 전국 1백13개 시민·사회·노동 단체는 김태정 법무부장관 퇴진을 위한 범국민서명운동에 착수하고, 국회에 법무부장관 해임 건의 청원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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