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 침범’ 북한의 숨은 의도
  • 서주석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 승인 1999.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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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지역 인정 받기’ 노려… 공동어로수역 협상 등 유연 대처 바람직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과 경비정이 1주일 넘도록 서해의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여 남하하는 사건이 발생해 남북한 간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남과 북은 지난 6월3일 ‘이산가족 문제 등 상호 관심사인 당면 문제’를 다룰 차관급 회담을 6월21일부터 개최하기로 합의·발표했다. 그런데 그 직후인 7일부터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했고, 이에 대해 우리 해군이 9일과 11일에 함정을 충돌시켜 ‘밀어내기 작전’을 감행했다. 그러자 북한은 11일 판문점 대표부 성명을 통해 우리 전투함이 자기네 영해를 침범했다고 강변하면서 즉각 철수와 사죄를 요구했다. 13일 유엔군이 제의한 판문점 장성급 회담을 북한이 수락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고 있으나, 침범 행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고 한국 해군의 충돌 작전 때 북한 군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아직 상황은 혼미하다.

북한 상층부가 지휘·통제

해상 경계선은 51∼53년의 휴전 협상 과정에서부터 문제시되었다. 지상의 접촉선이 경계선이 분명한 데 반해 해상의 접촉선은 모호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전쟁 동안 유엔군은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심지어 남포항 입구 초도와 청천강 입구 대화도, 원산만 입구 여도까지 관할하고 있었다. 그러나 휴전 협상을 조속히 타결하기 위해 이들 전략 도서를 포기하는 대신 인천 서방의 요충지로서 38선 이남에 위치한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 다섯 섬은 끝까지 확보하고자 했다.

해상 경계선 긋기는 협상 당시가 아닌 장래의 접촉선을 어디에 둘까 하는 문제였다. 협상에서는 해상 분계 기준으로 북측이 12해리, 유엔군측이 3해리 선을 주장했으나 결국 합의하지 못했다. 53년 7월의 정전협정에서 서해 5도 관할권이 유엔군사령관에게 있다는 점만 규정되면서 그 해 8월에 유엔군사령관은 서해 5도에서 3해리 떨어지고 북한 점령지와 중간선이 되는 가상선(假想線)을 북방한계선으로 설정해 시행했다. 당시 해상 지배 능력이 크게 떨어진 북한으로서는 북방한계선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으나, 55년 3월에 12해리 영해를 선포하면서 점차 이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북한의 공식적 문제 제기는 73년 12월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있었다. 당시 북한의 주장은 ‘정전협정(2조 13항 b)상 서해 5개 도서군만이 유엔군 관할에 있다고 하였으므로 그 주변 수역은 북한의 수역이다’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같은 주장에 따라 당시에도 북한 경비정의 월경, 한국 어선 불법 나포 등이 잇따랐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이후 상황은 다시 안정되었고 북한은 한동안 북방한계선을 인정했다.

그후 이 문제는 90년대 초반의 남북회담에서 주요한 의제가 되었다. 이에 대해 92년 2월에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11조)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또 92년 9월에 발효된 불가침 부속합의서(10조)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규정했다.

당시 북측은 군사분과위원회 회의에서 “정전협정(13항 ㄴ목)상의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 경계선’이라는 표현을 원용하여 해상 경계선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 경계선을 연장한 선’으로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않고 서해 5도 주변 수역이 자신들의 관할이라고 주장했지만, 최종 합의서에는 수용되지 않았다.

북한은 96년 4월에 비무장지대(DMZ) 관리 책임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뒤 판문점 등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무장 병력을 이동시켜 한바탕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판문점에 대한 군 병력 투입은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때문에 선전 효과가 크고, 한국이 공격을 받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지역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판문점 병력 투입 직후인 96년 5월과 7월에도 북한은 여러 차례 해상 경비정을 북방한계선 이남으로 월경시키는 등 군사 도발을 계속했으며, 그 뒤에도 매년 몇 차례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적이 있다. 이같은 북방한계선 침범은 과거 판문점 병력 투입과 유사한 점이 있다. 해상 경계선이 모호한 지역에 대한 해군 함정 투입은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초래할 염려가 없으면서도 분쟁 지역이라는 인상을 짙게 풍기는 심리전적 효과가 있는 것이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북방한계선을 무시하고 월경한다고 해서 한국이 전쟁 발발 위험까지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 지역을 차제에 국제적인 분쟁 지역으로 부각해 언제든지 ‘대남 틈새’의 하나로 써먹자는 것이다

이번 북한의 잇단 북방한계선 침범은 분명히 상당한 전략적 의도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사건 발생 경위가 어찌되었든 일단 침범 행위가 일과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곧 상황이 북한군 하부가 아니라 상층부 내지 최고 지휘부에서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같은 점을 감안해 북한의 침범 의도를 다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최초의 침범 행위는 시기로 보아 꽃게 등 고급 어장 확보라는 경제적 필요성이 작용했고, 어선 보호를 구실로 월경함으로써 이 해역에서 행동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하고 해상 경계선에 관한 기존 체제를 무력화하려는 통상적 의도가 바탕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북한군의 일사불란한 지휘 체제를 염두에 둘 때 영화 <쉬리>에서처럼 북한 군부의 일부 강경파가 남북회담을 제어하기 위해 시도한 도발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태가 장기화하고 한국군이 강력히 대응해 함정 충돌 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자 북한은 더 전략적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대표부 성명은 한국군의 움직임이 ‘무모한 전쟁 도발 단계에 들어갔다’고 간주하고 이를 유고 사태 종결과 연결하여 수정작계 5027에 의한 미국과 한국의 선제 공격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확대 해석했다. 결국 그들이 통상적으로 시도하는 대로 한·미 군사 관계를 이간시키고, 미국의 북한 정책에 대한 비난 및 반대 급부로서의 협상 여지 확보라는 전략이 이번에도 작동하고 있다고 하겠다. 남북회담을 견제한다는 의미는, 지난번 베이징 회담 약속에 따라 비료 지원선이 같은 해역의 북방한계선을 무사히 넘나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국측은 일단 북방한계선과 그 밑의 완충 수역을 마치 영해와 같이 취급하는 자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 수역을 영해라고 규정할 경우 유엔 해양법에 규정된 12해리 영해 규정을 원용하게 되어 북한과 불필요한 영해 논쟁에 빠질 수 있다. 북방한계선은 영해선이 아니라 정전협정 체제를 운용하는 차원에서 군사적으로 설정한 것이며, 국제 관행에 따른 ‘실효성의 원칙’과 ‘선점의 원칙’ ‘응고의 원칙’에 따라 한국의 관할 구역임이 분명하다.

단호히 맞서되 화력 사용은 삼가야

북방한계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북한이 월경 침범할 때 강력히 대응해서 몰아내기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다. 북한의 불법 침범이 있더라도, 전쟁을 초래하거나 이 지역 전체를 분쟁 지역화할 수 있는 과잉 대응을 해서는 안 된다. 한국 해군 고속정이 펼치는 충돌 작전은 화력을 사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전개되므로 아슬아슬하지만, 힘든 만큼 이 수역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쉬운 좋은 방법이다.

결국 문제는 장성급 회담이나 더 상위급 정치 회담에서 풀어야 한다. 일단 이번 사건이 장성급 회담을 통해 미봉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른 남북군사공동위원회와 같은 협의체가 이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며, 이에 대비해서 북한의 억지 주장에 슬기롭게 대처할 방안을 미리 개발해 두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 문제를 상생(相生)의 방식으로 푸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군사적 갈등으로 인한 통제 강화는 이 수역에서 생활하는 한국 어민들의 생계난과 불편을 야기한다. 남북한간 문제 해결 과정에서는 북방한계선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대신, 추가적 의제로서 해상 경계선 통항 절차 및 무해통항권, 한강 하구 운항권 문제, 공동 어로수역 설정 등 여러 편의 장치를 동시에 거론함으로써 긴장 완화와 어민 보호 등 부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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