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
  • 문정우편집장 (mjw21@sisapress.com)
  • 승인 1999.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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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랜드 수련원 참사는 어른들 합작품…부패·직무유기·안전불감증 정교하게 맞물려
마치 사전에 어른들이 모여 모의라도 한 것 같았다. 그만큼 열아홉 명 아이들을 죽음의 덫으로 몰아넣은 ‘작전’은 치밀하고 빈틈 없이 전개되었다. 군청·건물주·시공업자·인솔교사·소방서, 어느 누구 어디 한 군데 특별히 더 나무랄 데가 없을 지경이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인 부패·직무유기·안전불감 따위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고 힘을 합쳐, 자위력 없는 아이들을 공격한 것이 바로 화성 씨랜드 수련원 화재 참사이다.

화재 현장에서는 쉽게 부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본래 씨랜드 수련원 건물은 화재가 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 본 모습(고철덩어리 콘테이너 가건물)을 알 수 없었다. 외벽 전면을 흰 페인트 칠을 한 목재로 장식해, 누가 보더라도 공들여 지은 휴양소처럼 보였다. 그러나 불이 나자 그와 같은 ‘가면’이 바로 치명적이었다. 모기향에서 발화된 불(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발표. 유족들은 좀 더 정밀한 화인 분석을 요구하고 있다)이 목재에 옮겨 붙어 삽시간에 온 건물로 번졌던 것이다

수련원 방에 전기 콘세트가 하나도 없는 이유

소방차가 물을 뿌리자 건물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붕괴했는데, 그 또한 알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외벽 전체에 불이 붙자 쇠로 만든 콘테이너의 부피가 한껏 팽창했다가, 소방차가 물을 뿌려 온도가 내려가는 순간 갑자기 수축해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부 교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또 불이 취약 시간대인 새벽에 일어났다면 사망자 수가 얼마나 불어났을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화재 당시 6백20여명의 어린이들이 수련원에 묵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아찔한 일이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수련원에서 전자 모기향을 쓰지 않고 태우는 모기향을 쓴 것도 부패와 깊은 관련이 있다. 경기도경 수사과의 현장 감식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묵었던 숙소에는 단 한 개의 전기 콘센트도 없었다. 그 때문에 수련원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각 방마다 태우는 모기향을 설치했던 것이다.

기왕 부실 시공을 눈 감아주기로 마음먹었다면 왜 전기 콘센트는 설치하지 못하게 했을까. ‘시공업자와 담당 공무원간의 타협의 산물’로 보인다는 것이 감식을 맡은 수사관의 분석이다. 워낙 전기공사가 부실해 콘센트까지 설치하면 당장 과부하가 걸려 문제가 생길 것 같으니까, 공사 승인은 해주되 콘센트는 설치하지 못하게 했으리라는 것이다. 결국 건축주와 시공업자가 공무원을 구워삶아 합법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건물을 세워 장사를 해왔고, 담당 공무원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겉치레를 하고 편법을 쓰다가 이같은 참사를 빚었다는 얘기이다.
가장 안전했던 301호실

직접 화재의 원인이 된 전기 공사나 외벽의 목재 장식에서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시공업자간의 부패와 교묘한 타협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부패의 먹이 사슬을 어느 정도 파헤칠지는 알 수 없지만, 경찰이 화성 군수를 비롯한 담당 공무원과 건축주·시공업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건축주와 시공업자, 그리고 관련 공무원들이 죽음의 파티를 열었지만 인솔 교사들이 주의했으면 희생자를 훨씬 줄일 수 있었다. 화재 현장에 가보면 301호실에서 왜 그같이 많은 희생자가 나왔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301호의 아이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301호는 중간에 비상 계단 하나 없이 80m나 이어진 복도의 맨 끝에 위치해 어느 방보다 비상구에서 가까웠다. 더구나 맞은 편 방 314호에는 소망유치원 원장 천경자씨(37·여)를 비롯한 어른 7~8명이 자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아래 2층 계단 옆 공터에서는 인솔 교사 여러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결국 301호 아이들은 비상계단과 어른들로부터 불과 1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소망유치원 원장 천씨는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301호 방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을 구하려 했으나, 아이들이 출입문 반대 쪽에만 몰려 있어 구하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뒤 도움을 요청했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구조하려고 나섰던 레크레이션 강사 등은 301호의 문이 잠겨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의 수사관들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국과수에서는 자물쇠뭉치를 수거해 일단 문은 잠겨 있지 않았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으나,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좀더 정밀한 수사가 필요하다. 어찌 되었든 교사들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거의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파멸’ 낳는 속임수와 태만

불행하게도 건물이 지어지고 아이들이 변을 당한 순간까지도 안전 장치는 어느 것 하나 작동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이나 기관 중 누구 한 사람, 어디 한 군데라도 조금만 정신을 차렸다면 아이들은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차라리 특정한 소수의 잘못으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면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흉칙한 몰골로 서 있는 씨랜드 건물이 변명할 여지도, 더 이상 숨길 수도 없는 한국 사회의 벌거벗은 자화상이란 점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속임수와 태만으로 포장되어 있는 우리가 사는 방식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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