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당직 개편, 힘 얻은 ‘동교동’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1999.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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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 이만섭 총재대행 기용…주요 당직에 핵심 측근들 포진시켜
장고(長考) 끝의 선택이었다. 당초 청와대 주변에서는 김영배 대행의 후임으로 원내 인사가 임명되리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정치 개혁 협상 등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려면 아무래도 원내 인사가 낫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한때 김영배 전 대행을 유임시키기로 했던 것도 그런 상황 인식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김대통령이 원외인 이만섭 상임고문을 대행으로 임명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짚어볼 수 있다. 그로서는 우선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국 정당화에 대한 의지를 확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김대통령은 평소 정치 개혁의 최대 관건이 여야 각 당이 지역당에서 탈피해 전국 정당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해왔고, 그 맥락에서 8월 전당대회를 전국 정당화의 전초전, 16대 총선은 본선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대통령의 전국 정당화 구상은 여야 대립 관계가 첨예화하고, 영남 지역의 민심이 악화하면서 큰 차질을 빚고 있다. 국민회의 내부에서조차 ‘8월에 전당대회를 연다고 해도 새로 선보일 카드가 없다’는 말이 나오는 참이다. 이 때문에 김대통령은 대구 출신인 이만섭 고문을 당의 얼굴로 내세워 국민회의의 호남 색채를 탈피하고 동서 화합의 상징적인 의미를 부각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권노갑 고문 입김 크게 작용

이와 함께 이대행 임명은 영입파들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신당과 한나라당에서 들어온 영입파들은 그동안 당무에서 소외된 데 대한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해 왔고, 지난 7월9일에는 따로 모임을 갖고 당명 개정을 비롯한 당의 일대 혁신을 주장하기도 했다. 게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최근 국민회의에 입당한 민주계 의원들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등 영입파에 대한 원심력도 거세지고 있다. 김대통령으로서는 이를 단속해야 할 필요가 절실해진 것이다. 이규정·서한샘·정영훈 의원을 각각 지방자치위원장·홍보위원장·연수원장에 기용한 것도 영입파의 동요를 막기 위한 대비책으로 풀이된다.

김대통령은 TK 얼굴 마담을 대행으로 내세우는 대신, 주요 당직에는 호남 출신 실세들을 전면 포진시켰다. 동교동계 쌍두 마차인 한화갑·김옥두 의원을 사무총장과 총재 비서실장에, 개혁파의 대표 주자 격인 임채정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임명한 것이 상징적이다. 일찌감치 실세 총장감으로 거론되어 온 한화갑 의원을 총장에 기용한 것은 당 기강을 바로잡아 체질을 개선하고 내년 총선을 대비해 당세를 확장하기 위한 카드로 보여 눈길을 끈다. 한총장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원내 총무와 총재 특보단장을 거치면서 김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아 왔다.

김옥두 비서실장과 임채정 정책위의장 카드도 당의 위상 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김비서실장은 앞으로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에 정례적으로 참석해 당과 청와대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그동안 상대적으로 무시되어 온 당의 입장을 강력히 대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야 출신으로 국회 정치구조개혁특위 위원장을 지낸 임의장은 각종 개혁 정책에서 당이 정부를 이끄는 역할을 하리라는 전망이다.

이번 당직 개편에서는 동교동계 좌장 격인 권노갑 고문의 입김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만섭 대행 카드도 권고문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가 적극 추천했으며, 최근 김대통령은 권고문에게 “적극적으로 당무에 관여하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이렇듯 동교동계가 전진 배치된 배경에는 이들의 충성심과 인식 공유에 대한 김대통령의 기대가 깔려 있다는 것이 여권 주변의 분석이다. 내각제 담판과 총선 정국이라는 큰 난제를 앞두고 결국 ‘믿을 것은 당과 측근들’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예정대로 치러지게 될 8월 전당대회에서도 동교동계의 지원을 받는 인사가 당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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