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업 빅딜 무엇을 남겼나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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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전자, 통합 회사 경영 주체로 ‘낙점’…상승 효과 못거두면 부실 규모 커질 수도
LG반도체의 적자 행진은 98년에도 변함이 없었다. 97년에는 2천9백억원이던 것이, 98년에는 상반기에만 2천5백억원을 기록했다.

현대전자도 사정이 비슷했다. 전체 매출액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54.3%인 이 회사는, 97년 1천8백억원, 98년 상반기에는 3천3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분위기가 반전한 것은 98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였다. 반도체 경기가 기적처럼 되살아나 LG반도체의 경우 12월에만 4백억원 정도 흑자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반도체 빅딜 무용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LG 반발, 무위로 끝날 듯

그러나 정부의 빅딜 방침에는 변함이 없었다. 반도체 빅딜을 위한 평가 작업을 아서 디 리틀(ADL) 사가 맡았고, 그 결과가 12월24일 발표되었다. 결론은 현대전자에게 경영권을 넘긴다는 것. 아서 디 리틀 사의 정태수 한국 지사장은 “기술·생산·재무·마케팅·경영 관리 등 모든 면에서 현대전자가 우수했다”라고 밝혔다.

이같은 발표에 LG반도체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LG그룹의 주력 사업이 전자·화학인데, 반도체를 포기하고 어떻게 전자 사업을 육성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난 12월7일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에서 구본무 회장이 “그룹의 주력 계열사를 팔더라도 반도체는 포기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정부가 아니다. 금융감독위원회 이헌재 위원장은 LG가 끝까지 버티면 채권 금융기관을 동원해서라도 빅딜을 강행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LG가 빅딜을 거부하려면 단단히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 그룹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LG가 결국 반도체 사업 경영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평가 작업에서 현대전자의 우세는 초반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기술력은 서로가 앞서 있다고 주장하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면에서 현대(9%)가 LG (6.7%)보다 앞서고, 재무 측면에서도 현대가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부채 비율만 보면 현대(934.7%)가 LG(617. 4%)보다 높지만, 반도체 사업만 떼어 놓고 보면, 현대의 부채 비율이 오히려 낮다.

게다가 현대는 심비오스 사 매각과 맥스터 사 신주 발행 등을 통해 12억 6천만 달러를 조달했고, 사무 기기·컴퓨터·시스템 통합(SI) 사업 등을 분사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 조정으로 99년 1/4분기에 부채 비율을 200% 이내로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LG반도체와 달리 현대전자가 빅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현대는 반도체산업의 과잉 생산이 심각하다며 구조 조정 필요성을 적극 홍보했고, 아서 디 리틀 사의 평가 작업에도 적극 협조했다.

LG는 달랐다. 평가 기관을 선정하는 데서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제시한 아서 디 리틀 사를 거부했고, 이들이 제시한 평가 방법에 대해서도 거부 입장을 밝혔다. 이 때문에 아서 디 리틀 사는 LG와 평가 의뢰 계약도 체결하지 못한 채 평가 작업을 마감해야 했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분 비율이 7 대 3으로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통합된 회사의 경영권을 현대전자가 쥐게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럴 경우 삼성전자(18.8%)에 이어 세계 시장 점유율 2위(15.7%)를 차지하는 한국의 반도체 업체가 탄생하게 된다.

남은 문제는 엄청난 빚을 어떻게 갚느냐는 것이다. 98년 10월 말 현재 두 회사의 부채 총계는 18조4천억원. 이를 두고 한 증권사의 보고서는 자칫 ‘제2의 기아자동차’가 될 수도 있는 규모라고 경고했다. 빅딜 이후에 과감한 구조 조정을 단행하고, 통합에 따른 상승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대형 부실덩어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현대·LG 간의 반도체 통합이 과연 그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을까? 이번 빅딜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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