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부치 총리 한국 방문 결산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9.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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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협정 체결 추진 등 성과 많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가 3월19∼21일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갔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갖고 대북 정책·경제 협력 등 주요 현안을 두루 협의했다.

먼저 대북 정책. 일본은 지난해 8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뒤부터 대북 강경 입장을 취해 왔다. △북·일 수교 교섭과 식량 지원 유보 △북·일간 전세 항공기 운항 금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차관 협정 체결 지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오부치 총리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 정책을 설명한 뒤 일본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 또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라고 권유했다.

오부치 총리는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 정책에 조건을 달지 않고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이한 점은 ‘원칙적’ ‘기본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고 포용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두 정상 사이에는 여전히 미세한 인식차가 있다. 오부치 총리는 3월20일 고려대 강연에서 “핵·미사일 문제와 같은 안보상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중·장기적으로 남북 대립 구조를 해소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이원론적 인식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미·북한 수교, 북·일 수교, 대북 경제 제재 완화와 맞바꾸어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김대통령의 일원론적 입장과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또 현실적으로 북·일 관계를 들여다보면 특별히 이번 정상 회담으로 달라질 사안이 없다. 북한 문제에서 일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미사일 문제와 일본인 납치 문제이다. 미사일과 관련해서 일본 정부는 미·북한 협상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일본인 납치 문제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북한은 98년 6월에 조사 동결을 선언했다.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 북한과 일본 사이에 공식 접촉 창구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북한 제재 조처들도 교섭 창구가 다시 열리지 않는 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 이번 방한에서 오부치 총리는 ‘북한이 건설적으로 대응해 온다면’제재 해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이 먼저 전향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다만 이번 정상 회담으로 북한과 일본이 다시 접촉을 시작할 분위기는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일본의 나카야마 마사아키(中山正暉) 자민당 의원은 평양에서 만나 수교 교섭을 위한 탐색전을 벌였다. 일본, KEDO 분담금 지불 약속

대북 정책과 관련해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구어낸 가장 큰 성과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분담금을 지불하겠다고 일본측의 약속을 받은 것이다.

경제 분야 협력도 상당한 수준으로 합의되었다. 한·일 양국은 ‘한·일 경제 협력 21’을 발표하고 양국이 중점 추진할 5대 경제 협력 분야를 설정했다. △양국간 투자 협정 체결 추진 △이중 과세 방지 협약 추진 △기능·인증 분야 협력 △지적 재산권 협의 △오는 11월 열릴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서 상호 협력이다.

투자 협정을 체결키로 한 것은 이번 회담의 경제 분야 성과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현재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5%에 지나지 않는다.

이중 과세 방지 협약 문제는 2001년 발효를 목표로 양국 정부가 노력하기로 했다. 또 이번에 합의한 기능·인증 분야 협력은, 한국의 KS 상품처럼 품질을 인정한 제품에 대해서는 일본도 이를 존중해서 세관 품질 검사를 면제하자는 것이다.

이 모든 협력 사안들은 장기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판 자유무역지대(FTA)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다. 오부치 총리도 고려대 강연에서 “장기적으로 유럽연합(EU)과 맞먹는 자유무역권을 이 지역에 만드는 꿈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구상은 중국이 참여하는 것과 그밖의 절차 문제가 있기 때문에 2005년께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사안이다.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특이한 점은, 단골 메뉴였던 과거사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나라 관계가 예전과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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