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건 서울시장 “서울지하철 살릴 길은 구조 조정뿐”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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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로부터 지침 받은 적 없다”
파업은 끝났지만 서울지하철공사 노사는 여전히 강경 대치 중이다. 대화가 재개될 분위기는 어느 쪽에서도 감지되지 않는다. 서울 명동성당에 진을 치고 있는 지하철공사 노조 지도부는 5월1일 파업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일시 중단’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4월30일 노·사·정에서 ‘정’의 위치를 갖는 고 건 서울시장을 만나 지하철 노사의 갈등을 어떻게 풀고 경영을 합리화할 것인지 들어 보았다.

노조가 파업을 철회한 후에도 정부와 사용자측이 강경 대응을 계속해 노조를 자극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복귀 시점(4월26일 오전 4시)을 둘러싸고 그 시간 이전에 돌아온 노동자와 이후 복귀한 노동자 사이에 노·노 갈등이 심각하다. 27일 서울경찰청장과 현장에 나가 보니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복귀했다고 해서 폭행과 협박을 하는 행위를 그대로 두면 직무 환경이 유지될 수 없다. 시민의 발인 지하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전담 수사대를 구성하고 색출 작업을 벌였다. 31건이 발생했지만, 초기에 엄하게 다스린 결과 지금은 거의 가라앉았다. 경찰력이 빠져나간 후에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노조측은 봉함엽서 2만6천장을 비치해 ‘왕따’하는 노동자를 밀고하라는 사용자측의 탄압이 인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반발한다).

사용자측이 이런 기류를 노·노 갈등으로 몰아가 더욱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사용자측이 강성 노조를 거꾸러뜨렸다는 승리감에 젖어 있는 것 아닌가?

기관사가 불안해지면 지하철의 안전이 위협받는다. 공사측에 직장 화합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을 짜라고 권고했다. 일부에서 우리가 승리감에 젖어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만 원칙을 지켰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크고 작은 파업이 아홉 차례 있었는데 그때마다 사용자측이 원칙 없이 미봉책으로 노조와 타협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이다.

그 원칙이란 것이 무엇인가?

‘구조 조정을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이것은 천만 서울 시민의 명령이다. 하루에 10억원이나 적자가 발생해 시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지 않는가. IMF 체제가 아니더라도 피 나는 구조 조정을 해야 할 판이다. 구조 조정 원칙을 포기하려면 천만 시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지금도 민주노총과 공공연맹은 구조 조정 자체를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산하 노조인 지하철 노조는 이들에게 휘둘려 7월8일까지 단체 협약을 만들면 되는데도 서둘러 파업을 강행했다. 노동절 대투쟁에 앞서 지하철 노조를 전위 부대로 내세워 투쟁 열기를 높이려는 민주노총의 전술에 휘말린 것으로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이것이 희생양이 된 지하철 노조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노조측이 구조 조정 자체를 받아들인다면, 구조 조정의 내용·방법·시기 등 모든 것을 협의할 것이다(4월26일 노조 지도부는 파업 철회와 함께 ‘서울시 지하철 개혁에 관한 서울시 노·사·정 협약(안)’을 내놓았다. 이 협약안에서 노조측은 ‘노사 동수 직무분석위원회 구성’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구조 조정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다. 노조측은 이 기구에서 올 12월 말까지 지하철 개혁과 구조 조정 협상을 끝내자고 주장하고 있다. 서형석 대변인은 이 협약안은 파업 기간에 노조와 사용자측이 실무적으로 협의해서 만든 사실상 노사 협의안이라며, 노조로서는 더 낮출 수 없을 정도로 양보한 안이니 이를 수용하라고 주장했다).

노조가 구조 조정 자체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철회한 것으로 아는데, 왜 노사 간에 대화가 시작되지 않나?

현재 노조 집행부가 (체포 영장 발부로) 부자유스럽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대화가 원활하지 못하다. 노조의 의사를 대변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교섭 주체를 세우면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집행부를 세우라는 뜻이냐고 묻자) 노조 규약에 따라 현집행부가 지명하면 될 것이다. 현재 직무대행을 지명한 것 같은데, 확실치가 않아 지하철 공사(공사) 경영진이 사실 확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확인이 되면 노사 간에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현재 노조 지도부는 후선(제2의) 집행부를 구성하고 있는 중이다).

서울시는 빠지는 것인가?

우선 노사 간에 대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서울시가 끼어들어 열세 차례나 노·사·정 중재를 벌였지만 결과적으로 별 도움이 안되었다.

현실적으로 공사 경영진의 경영 자율권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당사자가 알아서 교섭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것 아닌가?

그동안 제약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4월부터 법이 개정되어 공사 경영진에게 전적으로 경영 자율성이 부여되고 있다. 서울시는 예산을 보조할 때만 그 용도에 대해 간섭할 뿐이다.
노사간 싸움이 다시 시작될 텐데 청와대의 교섭 지침은 무엇인가?

명시적으로 지침이 내려온 적은 파업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 국무회의 보고 때 직권 면직 기준 같은, 파업에 따른 후유증을 이러이러하게 처리하겠다고 보고하자, 원칙과 명분을 지켜나가되 유연하게 하라는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던 정도다.

직권 면직에서 유연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면직되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 것으로 보는가?

복귀 시한을 넘긴 노조원이 4천명 정도다. 이들에 대한 처리는 직권면직심사위원회가 결정할 것이다. 우선 불법 파업 주동자나 적극 가담자, 규찰 대원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단순 가담자나 타의에 의해 복귀 시한을 넘긴 노조원은 구제가 되리라 본다. 이런 원칙을 적용하면 결국 (직권 면직되는 사람이) 많은 숫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조측은 직권 면직의 수위와 함께 손해 배상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소송할 방침인가?

공사가 재산상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청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노조는 26일 협약안에서 조합원에 대한 징계 방침을 철회하고 민사상 책임을 묻지 말라고 요구했다. 노조 지도부 구속 철회라는 형사상 ‘선처’ 문제는 걸지 않았다. 만약 민사상 책임인 손해 배상 청구 소송마저 강행한다면 노조측의 반발이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공사측이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과 중재 신청을 통해 구조 조정을 밀어붙이려는 시도가 무위로 끝나지 않았는가?

중앙노동위원회 권고를 존중해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될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공사가 제기한 조정 신청에 대해 ‘조정 대상이 아님’이라는 의견을 냈으며, 노동 조건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노사 당사자간 자주적 노력으로 교섭을 통해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때 결국 빚더미에 올라 않은 지하철 경영을 어떻게 정상화하느냐에 대한 대안을 둘러싸고 충돌할 것으로 보이는데, 사용자측의 복안은 무엇인가?

2월에 나온 서울시 시정개혁위원회 의견은 중앙 정부와 서울시, (지하철) 이용자, 지하철공사라는 세 주체가 삼등분해 고르게 고통을 분담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국민 세금으로 빚을 갚고 지하철 요금을 올리려면 먼저 공사가 뼈를 깎는 구조 조정 노력을 보여야 한다. 누적 적자가 2조8천억 원이나 되며 올해도 3천4백50억원의 운영 적자가 예상되는데 공사가 먼저 경영 개선 노력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노조측은 누적 적자와 재무 구조 악화의 주요 요인인 건설 부채를 다른 나라처럼 중앙 정부(국고)가 떠안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4조 3교대를 도시철도공사처럼 3조 2교대로 바꾸어 3년 동안 인력 2천78명을 감축하자는 것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인력 감축안에 대해서도, 거듭 말하지만, 사실상 정리 해고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현재 이미 결원이 5백명이나 되고 3년 동안 예상되는 자연 감소 인원 5백여 명, 그리고 2기 지하철(도시철도공사)에 전출될 7백여 명을 합치면 3백80여 명이 남는다. 이 사람들도 공사 업무를 민간에 위탁할 때 최대한 취업을 알선할 생각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노조는 명분 없는 파업을 했다(이에 대해 노조측은 한마디로 말장난이라고 맞받아쳤다. 자연 감소 인원이란 정년 단축으로 인한 것인데 이것은 사실상 정리 해고이며, 도시철도공사에 7백명을 보낸다는 계획도 도시철도공사의 반대 때문에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고통을 주기에 앞서 경영 책임을 묻는 것이 순리 아닌가?

구조 조정 자체가 경영 구조를 바꾸는 것 아닌가. 아직 직제가 바뀌지는 않았지만, 경영진도 사실상 줄였다. 대기 발령을 받은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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