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장관급 회담 ''뜻밖 합의''내막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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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차 남북 장관급 회담 ‘뜻밖 합의’…군사회담·경협 등 ‘윈-윈’ 성과
제13차 남북 장관급 회담(2월3∼6일)이 뜻밖의 성과를 냈다. 6자 회담 개최 사실을 기습적으로 발표하고 개성공단 문제 등을 제기하며 공세적으로 나왔던 북측의 초반 분위기를 감안해도, 매우 이례적인 결과였다.

지난 2월6일 남북이 발표한 공동 보도문 6개 항 중 첫 항은 당면한 6자 회담에 관한 것이었다. ‘남과 북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제2차 6자 회담이 결실 있는 회담이 되도록 협력하기로 하였다’는 문안이 도출되었다. ‘결실 있는’이라는 단어가 삽입된 것이 인상적이다. 청와대 고위당국자는 “(6자 회담에 대해) 여태까지 우리 희망대로 된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상당한 성과다”라며 감격했다.

2항의 장성급 회담과 3항의 개성공단 문제에서는 남과 북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구체적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2항은 군사당국자 회담에 대한 것이다. ‘남과 북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쌍방 군사당국자 회담을 조속히 개최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에 대해 그동안 비판론자들은 ‘경협과 사회 문화 교류에 치중한 나머지 군사 안보 문제를 소홀히 했다’고 비판해 왔다. 평화 번영 정책은 그래서 군사 안보 문제에 많은 비중을 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 문제는 한국이 아니고 미국과 관련된 문제라는 북한의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았다.

일부 소식통들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북측의 기류에 묘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경의선 도로 연결을 위한 남북 대령급 실무회담 자리에서 북측이 ‘주한미군의 후방 배치는 북에 대한 선제공격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간헐적으로 제기해 왔는데, 남측은 이에 대해 ‘남북 군사회담을 통해 논의해보자’고 응수했다고 한다. 이 말이 씨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군 후방 배치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 “신뢰구축 조처 시작될 수도 있다”

양측이 성실하게만 응한다면 장성급 회담의 의미는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매년 꽃게잡이 철에 반복되는 서해에서의 무력 대치를 예방할 길이 열렸다. 또한 개성공단 활성화와 더불어 대두하게 될 비무장지대 평화적 관리를 위한 대화 창구가 개설된 것이다. 청와대 당국자는 “군비축소 전 단계인 신뢰구축 조처(CBM)가 시작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북측 협상단은 이번에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 경협에 주안점을 두었다. 회담 기간 내내 집요할 정도로 개성공단 문제에 매달렸다고 한다. 개성공단은 원래 남측이 먼저 제안한 사업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북측이 더 열을 내고 남측은 뭉그적거리는 양상이 되풀이되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대남 경협파가 군부 강경파의 공격을 받아 구석에 몰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북측 대표단이 이번에 보인 과잉 제스처는 바로 그 같은 위기감을 반영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해 말부터 개성공단에 대한 남측의 내부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특히 국내 중소기업들의 급박한 사정이 청와대나 정부 내에도 널리 알려져 추진력을 얻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2007년으로 예정되었던 시범공단 100만평 완공 시점이 2006년으로 앞당겨지고 올 상반기에 만평 규모의 시범 공장 사업을 착공해 올해 말 제품을 생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이번 남북 합의문에 일부 반영되었다. 북측 대표단 역시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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