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안풍’에 풍비박산 나나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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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삼재 ‘9백40억원 폭탄 진술’…“YS의 침묵은 긍정의 표시”
지난 2월6일 서울고법 404호. 안기부 예산 불법 선거비 전용 사건, 이른바 ‘안풍’ 공판에 출두한 강삼재 의원은 폭탄 진술을 했다. “김영삼 당 총재이자 대통령에게서 9백40억원을 직접 받았다.” 지난 3년 동안 끌어온 검찰 수사와 1심 판결을 뒤집을 충격 발언이었다.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노영보 부장판사(서울고법 형사7부)도 긴장했다. 강삼재 의원 변호인단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부는 3월1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을 소환하기로 결정했다.

안풍 태풍이 상륙한 상도동은 긴 침묵에 들어갔다. YS는 안풍 관련설이 불거질 때마다 ‘씰데없는 소리’라고 무시했다. 하지만 정치권 주변에서 YS개입설은 끊이지 않았다.

대검 중수부가 ‘안풍’의 꼬리를 잡은 것은 2000년. 대검 중수부는 경부고속철 차량 선정 로비 의혹을 수사하다가 강삼재 의원이 관리하는 경남종합금융 차명 계좌에서 1996년 총선을 앞두고 뭉칫돈이 드나든 흔적을 발견했다. 계좌 명의는 이번에 불법 대선자금 수수로 구속된 한나라당 이재현 재정국장이었다.

2001년 1월 검찰은 1996년 총선에 안기부 예산 1천1백97억원이 당시 신한국당 선거자금으로 전용되었다고 발표하며 김기섭 안기부 운영차장을 구속 기소하고, 사무총장 강삼재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신한국당 후신인 한나라당을 상대로 9백40억원대 국고 환수 소송을 냈다.

1심 재판은 파행의 연속이었다. 재판부 기피신청과 증인 불참석 등 2년 8개월을 끌다 지난해 9월 1심 판결이 났다. 1심 재판부는 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에게 징역 5년 추징금 1백25억원, 강삼재 의원에게 징역 4년 추징금 7백31억원을 선고했다. 바로 다음날 강삼재 의원은 의원 직을 전격 사퇴했다. 1심 재판 동안 강삼재 의원은 자기에게 돈을 준 사람에 대해 무덤까지 안고 가겠다며 밝히기를 꺼렸다. 그러다 이번에 돈 전달자로 YS를 지목한 것이다.

2라운드로 돌입한 안풍 재판의 핵심은 돈의 성격이다. 검찰은 YS가 개입되기는 했지만 안기부 예산이라는 입장이고, 강삼재 의원 변호인단은 YS가 안기부 계좌에 관리한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한다. 강삼재 변호인단은 정인봉·장기욱·이정락 변호사 등 13명. 구속된 ‘차떼기’ 주인공 서정우 변호사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장기욱 변호사는 “돈의 본질은 대선 잔금이나 당선 축하금이고, 일부가 안기부 이자나 쓰다 남은 불용액에 포함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변호사는 “당 총재에게서 무슨 돈인지도 모르고 받은 강삼재씨는 죄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검찰 진술은 YS 두번 죽이는 일”

지난 3년 동안 강삼재 의원은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는 변호인단에도 안풍과 관련해 YS를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강삼재 의원이 변호인단에 YS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2월6일 법정 진술 2시간 전, 점심 식사 때라고 한다. 장기욱 변호사는 “1심 재판이 끝나고 강의원이 강하게 부정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장변호사는 YS의 침묵 역시 긍정의 표시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의원은 검찰 재조사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다. 1심 재판 중이라면 검찰이 재조사를 해서 공소를 취소할 수 있지만 2심부터는 공소취소권이 없다. 또한 재판 진행 중에는 검찰에 강제소환권이 없다. 강의원의 한 측근은 “법정에서 YS를 한번 배신했는데, 검찰에 가서 진술하면 YS를 두번 죽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YS의 침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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