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핵폐기물 북한 반입 저지 규탄대회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7.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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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물 북한 반입 저지를 위한 전세계 규탄 대회
대열의 맨 앞줄은 벽안의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연단에 오른 외국인들은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일본 원자력정보자료실 등 각국 환경단체들이 낸 대만 핵폐기물 북한 반입 반대 성명서를 낭독하고 구호를 선창했다.

“스톱 더 웨이스트(Stop the Waste)!”

그리고 집회에 모인 한국인들이 그 구호를 영어로 따라 외쳤다. 그 중에는 한복을 차려 입고 어깨띠를 두른 아주머니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2월14일 오후 주한 대만대표부가 들어 있는 서울 광화문빌딩 앞. 대만에서 쫓겨온 녹색연합 관계자들이 보름 넘게 진치고 있던 그 자리에서 대만 핵폐기물 북한 반입 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가 주관하는 전세계 규탄 집회가 열렸다.

외국인들이 연단에서 구호를 외치고 한국인들이 이를 따라 하는 역설적인 광경은 대만 핵폐기물의 북한 반입 문제가 단순히 한국과 대만 또는 대만과 북한 사이의 국가간 문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핵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은 외교나 국제 질서 문제 이전에 아직은 ‘위험한 거래’라는 점이다.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수송·저장할 방안이 없이 이루어지는 북한 반입은 그래서 남북 관계 긴장 이상으로 더 큰 재앙의 예고편이 될지 모른다.

이 날 성명서를 낭독한 김지하 시인은 혼잣말처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인데 한보 사태에 밀리고 황장엽 충격에 덮여서…”라고 몇 번씩 혀를 찼다. 게다가 이 집회가 있은 며칠 뒤 이번에는 이한영씨 피습 사건까지 덮쳤다. 연이어 터지는 남북한 관련 대형 사건에 온통 눈길이 쏠린 사이 대만 기륭 항에서 평안남도 남포항에 이르는 1천6백㎞의 위험스런 뱃길은 이미 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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