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후폭풍에 덮인 타이완의 앞날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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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총통 선거 후폭풍…동북아 정세에도 큰 여파
유세 도중 피습을 당했던 천수이볜 현 총통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타이완 정국은 시계 제로이다. 혼미 상태에 빠진 타이완 정국과 더불어 타이완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

3월20일 실시된 총통 선거 결과, 천수이볜 현 총통은 국민당 롄잔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천수이볜 총통의 득표 수는 국민당 롄잔 후보에 비해 겨우 3만 표(총 유효 득표 수의 0.2%) 가량 앞섰다. 그런데 이보다 10배가 많은 30만 표 이상이 무효표로 처리되자 국민당의 롄잔 후보측은 즉각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재검표를 요구하고 있다.

당초 타이완 총통 선거는 천수이볜 총통이 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신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중국의 군사 위협에 반대하는 이른바 ‘방위성 국민 투표’(대등 담판과 국방력 강화)를 추진함으로써 국제적 이슈로 떠올랐다. 대륙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맞서 독립을 주장했던 민진당 천수이볜 후보와 현상 유지 또는 대륙과의 화해를 주장했던 국민당 롄잔 후보의 대결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 박빙의 승부가 점쳐지는 가운데 롄잔 후보측이 다소 앞선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투표일 하루 전인 3월19일 유세중이던 천수이볜 총통을 향해 날아든 총알 한방이 양측의 팽팽한 균형 상태를 깨뜨린 것이다. 다행히 천 총통을 겨누었던 총알은 아랫배를 스쳐 지나가 선거는 이튿날 예정대로 치러졌지만, 총격 사건은 타이완판 ‘총풍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타이완 정국은 물론 동북아 전체를 불확실성의 늪으로 빠트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이번 타이완의 총통 선거는 ‘독립 자주냐’ 아니면 ‘하나의 중국에 따른 일국양제냐’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어서 중국·미국 등 이해 당사국은 물론 한국·일본 등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타이완 독립 논의는 1990년대 집권했던 국민당 리덩후이 총통이 ‘타이완이야말로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 합법 정부’라는 종래의 국민당 입장을 일부 수정해 ‘양안 관계는 특수한 국가 대 국가 관계’(이른바 ‘양국론’)로 규정하면서 단초가 열렸다. 이후 독립 논의는 2000년, 타이완 원주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잡은 민진당 천수이볜 정부의 출범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민진당은 이미 1991년 양안 관계에 대해 ‘타이완 주권은 독립된 것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터였다.

타이완 독립 문제는 청나라 때부터 이 지역을 다스린 중국과,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이 지역에 연고권을 갖게 된 미국 사이에 최대 현안이 되어왔다. 중국이 타이완 독립을 결사 저지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타이완이 독립하면, 티베트·신장 자치구·내몽골 등 다른 ‘변방’의 독립 움직임이 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천수이볜 총통의 독립 움직임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던 중국은 일단 지난 3월20일 총통 선거와 함께 실시된 방위성 국민투표안이 부결된 데 대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한편 미국은 최근 들어 타이완이 한반도와 더불어 동북아 지역 최대의 전략 거점이라는 점에서 타이완의 대륙 귀속을 원치 않으면서도 급격한 변화는 가급적 피하는 ‘현상 유지 정책’을 펴왔다. 지난해 타이완 독립 의지를 담은 신헌법 제정을 강행하려던 천수이볜 총통을 조시 부시 대통령이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야당측의 재검표 주장이 받아들여져 만약 선거 결과가 뒤집힌다면, 미국이 보기에 동아시아 전략 발판으로서 타이완의 가치도 그만큼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미국은 한반도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입김이 세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것이 타이완의 총통 선거가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닌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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