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새 총리 푸틴의 미래
  • 윤찬혁 (대우경제연구소 모스크바 주재 연구원) ()
  • 승인 1999.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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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변덕·국민 지지가 변수
2000년 7월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대선 후보군에 새 인물이 합류했다. 8월10일 푸틴 연방보안국 국장(46)이 총리서리로 임명된 것이다. 러시아의 총리는 당연직 대선 후보로 인식된다. 병약한 옐친이 임기 말인 데다 12월 총선과 내년 7월 대선을 앞둔 시점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총리 출신 대선 후보는 프리마코프이다. 그는 루시코프 모스크바 시장과 함께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이다. 체르노미르딘 전 총리도 지지율은 낮지만 독자 정당이나 범개혁 진영의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푸틴 총리를 지명한 이유는 대선 구도와 관련된 동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체르노미르딘뿐 아니라 키리옌코·프리마코프와 같은 전임 총리는 경제 개혁 부진을 빌미로 해임되었다. 그러나 스테파신 총리 재임 기간에는 장밋빛 경제 회복 전망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전 총리에 비해 경제 여건이 양호했는데도, 스테파신은 크렘린이 야당 세력에 포위되어 궁지에 몰리게 만드는 정치적 무력함을 보였다. 특히 옐친이 견제의 칼날을 늦추지 않는 루시코프 시장이 획기적인 정치 기반을 마련하도록 방관함으로써,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고자 하는 옐친의 욕망을 부추겼다.

러시아 비상 시국, 계속될 가능성

이로 인해 스테파신 전 총리는 총리 재임 기간에 지방 정부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리한 권한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82일 만에 크렘린 막후 실세들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른 푸틴을 2000년 대선 구도를 상정해 살펴보면 두 가지 측면이 눈길을 끈다.

첫 번째, 푸틴은 전임 총리와 달리 옐친 이후 시대의 후계자인 점이 분명히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옐친이 분명하게 후계자임을 시사한 것이다. 푸틴이 총리 서리에 지명된 직후, 2000년 대선 출마 의사를 공식으로 밝힌 것도 이전 총리 출신 후보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점이다.

푸틴이 옐친의 후계자일 가능성은 최근에 나타난 옐친과 푸틴의 행보나, 옛 소련의 권부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면 더욱 짙어진다. 우선 후계자 지명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옐친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옐친은 건강 악화와 외환 위기, 그리고 임기 말의 레임 덕 현상 때문에 임기 이전 중도 하차 악몽에 시달렸다. 심복이어야 할 검찰총장이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검찰총장을 해임하려던 시도가 상원에서 두 번이나 거부되었다. 푸틴은 권력 기반을 흔들던 스쿠라토프 검찰총장을 제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역사적으로도 옛 소련의 권력자들은 옐친과 같이 병마로 인해 장기간 측근에 의존하면서 정보기관 출신 인사를 중용해 왔다.

하지만 푸틴이 대선 후보로 등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처음으로 옐친의 후계자로 떠올랐으나, 현재의 정국 상황을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즉 옐친은 반옐친 캠프가 등장한 데 대해 경고하는 의미로 이번 인사를 단행했을 수도 있다. 그의 예측 불가성 정치 행태를 고려하면 향후 정국은 더욱 예측하기 어렵다.

푸틴이 총리 취임 이후 프리마코프가 보여 주었던 정보기관 출신의 노회함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다. 만약 푸틴이 크렘린 막후 세력과 연대해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이는 곧 프리마코프의 영향력 변화와 그를 영입하려는 루시코프 시장의 대선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푸틴이 프리마코프가 누리는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지도 중요한 변수인데, 그는 아직까지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더구나 러-벨로루시 통합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황이므로 비상 시국이 계속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보면 푸틴이 총리에 지명되고 대선 후보군에 합류했지만, 2000년 대선 구도는 아직 안개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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