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그룹 파멸의 덫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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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그룹 '족벌의 몽상' , 경영주 사법처리로 파국 맞아
부도, 법청관리 신청, 압수 수색, 검찰 소환 그리고 사법 처리. 지난 2월 말 무등건설 등 덕산 그룹 7개 계열사의 부도와, 고려시멘트(전 대표 박성현) 계열사들의 법정관리신청으로 이어진 덕산 사태는 부도 정확한 만에 그룹 총수의 사법 처리로 끝났다. 덕산그룹 부도의 정확한 원인은 수사를 맡은 대검 중수부(이원성 검사장)의 수사 결과가 나와야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박성섭 덕산그룹 회장(47)의 무리한 사업 확장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무리한 확장의 화근은 과욕이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덕산그룹의 토대는 87년까지 박회장의 부모가 운영해온 학교법인 조선대학교이다. 박씨의 부친 박철웅씨(83)와 모친 정애리시씨(71)는 46년 조선대를 설립한 이후 무려 40년 동안이나 각각 총장과 이사장으로 군림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씨 일가는 부속 유치원에서부터 국 · 중 · 고교, 전문대,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사학 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 왕국에는 늘 족벌 체제와 부정편입학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

대학병원장의 '쪼인트를 까는' 박총장의 무용담에서부터, 학교 장비와 학생들을 실험 ·실습 명분으로 동윈해 학교와 실습 시설을 건설한 일화, 그리고 스스로를 태양에 비유한 박총장의 훈시에 이르기까지 전설처럼 회자된 이 사학 왕국의 비리와 부정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정의사회 구현' 을 표방한 신군부가 70년대의 부정 편입학과 족벌 체제에 대해 내린 철퇴도 박씨 일가의 왕국을 허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철옹성도 87년 6월항쟁의 거센 민주화 바람 앞에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6공 정권은 무려 1백13일 간이나 계속된 조선대 학생들의 사상 초유의 장기 농성 사태와, 박총장의 독전적인 학원 운영에 반감을 표시한 지역 여론에 밀려 끝내 박총장을 해임 처분하고 관선 이사를 파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박씨 일가는 그뒤로 행정 소송 제기와, 사조직을 동원한 내부 분열공작 등 조선대를 되찾기 위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박성섭 회장이 덕산그룹을 창업하고<무등일보>를 창간한 배경에는 박씨 일가가 역향력을 확대해 조선대를 되찾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관측이 이지역의 지배적 시각이었다. 그래서 무등일보사는 박철웅 왕국의 재기를 막으려는 조선대생들의 단골 기습 대상이 되곤 했다. 물론 금융가에서 ‘서석동 할머니’로 통하는 정애리시씨가 살고 있는 광주시 서석동 집도 학생들의 기습 대상에서는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3월6일 정애리시씨는 자신의 서석동 집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이 눈물로 마지막호소를 했다.

"지금 여러 기자님들께서 취재를 하고 계시는 이 집 역시 회사에 담보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얼마 안가서 경매될 것입니다. 마음 아픈 것은, 원래 이집 자리에 작은 도서관이라도 하나 지어 그동안 저희 때문에 최루탄으로 고생하신 동네 이웃께 보답하고자 했었는데 그것마저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심장, 당뇨, 백내장 등이 악화되어 수술후 시력이 회복되지 않은 전 총장께서 머무르고 계시는 서울집 역시 경매 처분될 것입니다. 이번에 저희 가족은 진정한 의미에서 모든 소유로부터 손을 뗍니다. "

한때 장영자씨보다 현금 동원력이 더 뛰어난 '큰손'으로 소문난 '서석동할머니'도 아들의 과욕으로 빚어진 부도 사태를 막지는 못한 셈이다. 또 한때 태양으로 군림한 박철웅 총장 또한 지금은 자식의 부도 사태와 후속조처(사법처리)마저 파악하지 못할 만큼 중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50년 동안 줄곧 소유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한 일가족의 영욕은 결국 이렇게 인생무상으로 끝난 셈이다. 덕산그룹의 몰락은 결국 족벌의 폐쇄성을 넘지 못하는 재벌이 욕망을 무한대로 팽창해 나가는 과정에서 빚어진 비극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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