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정국 “갈수록 꼬이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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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검표 결과 따라 국론 분열·국제 문제 야기할 수도
타이완이 ‘총통 선거 불공정 시비’로 여전히 들끓고 있다. 타이완 사태의 발단은 지난 3월20일 치러진 총통 선거다. 투표 결과, 집권 민진당의 천수이볜 후보가 국민당 연합의 렌쟌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문제는 천수이볜측이 렌쟌측에 불과 3만표 정도(0.2%) 앞선 아슬아슬한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는 데 있다. 선거일 하루 전에는 유세 중이던 천수이볜 후보측에 대해 의혹투성이의 총격 사건까지 발생했다. 총격 사건은 분위기를 반전시켜 천 총통 재선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렌쟌 후보측과 국민당 지지자들은 승리를 도둑맞았다며 ‘시아타이(下臺)’, 즉 천 총통 즉각 하야를 외치기 시작했다. 야당 지지자들은 선거일 바로 다음날부터 총통부 앞에 몰려가 시위하기 시작했고, ‘당선자를 확정 발표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진 3월26일에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타이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건물에 난입하기도 했다. 이튿날에는 전국에서 약 50만 명의 시위 인파가 수도 타이베이에 몰려들어 ‘부정 선거 규탄 대회’를 열고 곳곳에서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렌쟌측이 제기하는 부정 선거의 근거는 대략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선거일 하루 전 발생한 ‘천수이볜 피격 사건’이 자작극이라는 것이다. 자작극설은 피격 당시 현장에서 찍힌 사진과 병원 이송 직후 찍힌 사진에서 천수이볜 후보의 피격 부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대조 결과 드러나면서 더 크게 불거지고 있다.

둘째, 무효표 논란. 야당측은 2000년 선거 때 무효표가 12만표에 불과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선거에서 무효표가 33만표 넘게 나온 이유를 ‘야당 표에 대한 정부·여당의 무더기 무효 처리 결과’로 돌리고 있다.

셋째, 정부·여당이 선거 당일의 보안 강화를 핑계로 군·경 및 공무원에 비상을 걸어 이들이 투표장에 갈 수 없게끔 조직적으로 투표 행위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총통 선거 투표일에 타이완 안보와 관계된 ‘방위성 국민 투표’가 함께 치러졌는데(이 국민 투표는 부결되었다), 때마침 선거 하루 전 총통에 대한 피격 사건까지 겹쳐 어느 때보다 삼엄한 초비상 상태에서 실시되었다.

하야 시위가 절정에 오르던 3월27일 밤, 천수이볜 총통은 기자 회견을 열어 마침내 야당측의 ‘재검표’ 요구를 전격 수용했다, ‘재검표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야당측과 타협을 모색하기 위해 여야 영수 회담을 열겠다고 제안했다.

천 총통이 재검표 요구를 전격 수용하면서 타이완 정국은 일단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앞날은 예측 불허 상태다. 우선 재검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야당측은 이와 별도로 ‘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재선거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천수이볜 총통으로 대변되는 타이완 토박이 세력(내성인)과, 국민당으로 대변되는 ‘외성인’(중국 공산화 때 타이완으로 넘어온 본토 출신) 세력 사이에 타이완 독립 문제를 둘러싸고 국론이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부 갈등이 조기 수습되지 못하면, 타이완 문제는 국제 이해 다툼의 자기장으로 빨려들어 혼돈으로 치달을 수 있다. 벌써부터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은 천수이볜 당선을 공식 승인했다. 중국은 이를 타이완 문제에 대한 ‘내정 간섭’이라며 견제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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