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민정 이양 맡은 유엔의 고민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4.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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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이라크 임시 정부 구성 떠맡아…시아파 반발 등 난제 많아
지난해 5월 종전 이후 미군정의 통치를 받던 이라크가 오는 7월부터는 미국이 아닌 유엔의 깃발 아래 새롭게 출발한다. 최근 이라크 현지를 방문해 이라크 민정 수습 방안을 집중 모색해온 라크다르 브라히미 유엔 특사가 제시한 방안에 따르면, 7월1일을 기해 지난 1년간 미군정의 손발 노릇을 해온 이라크 과도통치위윈회(IGC)가 해체되고 대신 유엔이 주도하는 임시 정부가 출범한다.

시종일관 군정을 고집하던 미국이 이처럼 태도를 바꾼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은 폴 브레머 행정관이 이끄는 미군정 당국과 지난해 7월 출범한 친미 성향의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가 민심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설상가상으로 점령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발생하는 이라크인들의 저항이 날로 격렬해지면서 미군 사상자가 늘고 있는 것도 백악관으로 하여금 군정에 한계가 있음을 절감케 했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가뜩이나 이라크 문제로 정치적 곤경에 처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 4월16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브라히미 특사가 제시한 방안을 쌍수로 환영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민정 이양이 유엔의 손에 넘어가더라도 이라크 재건 사업을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데다 10만여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 감소는 크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유엔은 민심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보다 새로 들어설 임시 정부가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님을 분명히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유엔은 임시 정부에는 미군정이 임명한 과도통치위원회 인사들을 되도록 배제하고 민정 계획과 관련한 유엔 안보리의 특별 결의안도 얻어낸다는 방침이다. 나아가 임시 정부의 대통령, 부통령 2명, 총리는 이라크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인사들로 채우고, 종파간 화해를 증진하기 위해 임시 정부와 별도로 범국민적 화해협의체도 발족한다는 방침이다.

“유엔은 강제력 없어 제구실 못할 것”

문제는 브라히미 계획이 얼마나 순탄하게 추진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미 존재 가치를 상실한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의 일부 시아파 위원들은 브라히미 특사의 계획에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그중에는 미군정 당국의 총애를 받아온 아메드 찰라비도 포함되어 있다.

또 다른 걸림돌은 유엔 업무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협조 여부다. 유엔은 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 이후 경제 제재를 받아온 이라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원유 대 식량 맞교환’ 계획을 실시해 왔으나 그 과정에서 유엔의 감시 기능이 소홀한 틈을 타 약 100억 달러 이상이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호주머니로 흘러들어갔다. 설득과 타협 외에 강제력이 없는 유엔이 이라크 각 정파의 이해 다툼을 조정하며 내년 1월 국민투표가 실시될 때까지 이라크를 이끌어갈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이라크인들 사이에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당장 유엔이 맞닥뜨린 문제는 선거 준비와 감시를 위해 파견될 유엔 요원들에 대한 안전 확보이다. 지난해 8월과 10월 이라크 현지의 테러 공격으로 유엔 요원 20여 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안전이 100% 확보되지 않는 한 유엔 요원을 한 사람도 파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럴 경우 이라크 민정 이양 계획은 또다시 좌초할 수도 있다. 미국이 최근 유엔 요원들의 치안 목적을 위해 전세계 12개국 이상에 파병을 요청했지만 국제 사회의 호응이 미미해 유엔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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