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생 '제적 투쟁' 갈수록 태산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1996.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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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대생, 등록 거부 투쟁 강행… 제적 문제 해결돼도 유급 사태 엄청나
 
교육부가‘학칙 개정’을 승인함에 따라 초읽기에 들어갔던 한의대생들의 무더기 제적 문제는 당분간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집단 수업 거부로 작동하기 시작한‘시한 폭탄’은 여전히 뇌관이 제거되지 않은 채 한방 분야 의료 공백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연쇄 폭발을 예고하고 있다.

교육부는 8월31일 경희·경원·동국·세명 등 전국 7개 한의과대학측이 재학생들의 수업 거부와 미등록으로 인한 대량 제적 사태를 막기 위해 마련한 학칙 개정안을 일괄 승인했다. 대학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개정된 학칙의 주요 내용은 한의대(의대) 특유의 유급 제도를 폐지하거나 변경함으로써 제적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한의대측이 수업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전제 조건을 내걸고 개정 학칙을 승인했다. 교육부가 요구한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9월16일까지 등록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학교가 알아서 제적 처리하라는 것이다. 둘째, 수업 정상화 노력에 동참하지 않는 교수에 대해서도 학교측이 엄중 징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발표 후에도 사태가 호전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의대생들은 이번 조처를 ‘술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시간을 벌고 △국민에게 할 일을 다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며 △파국 사태가 올 경우 책임을 대학측에 떠넘기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것이다. 대다수 한의대생이 여전히 등록 거부 의사를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경희대 한의대 학생들은 9월2일 보고대회를 열어 등록 거부 투쟁을 계속하기로 다짐했다. 한약 조제 시험 무효와 약사의 한약 조제 금지 등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제적을 불사하겠다는 종래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수련의 졸업 못해 한방 병원 공백 심각”

설혹 한의대생들의 입장이 돌변해 9월16일까지 등록을 마쳐도 문제는 남는다. 제적과는 별도로 한의대생 전체 학년의 유급이 확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각 대학은 먼저 신입생 선발 업무와 학사 관리에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급된 학생을 그대로 둔 채 신입생을 뽑을 경우 학교측은 불어난 학생을 가르칠 공간과 교수 인력이 절대 부족해 수업이나 실험·실습에서 파행을 거듭할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이 때문에 한의대 대부분은 유급생에 대한 재교육 계획은 고사하고, 신입생을 뽑을 것인지와, 뽑으면 얼마나 뽑을 것인지 선뜻 단안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유급 사태가 국민 보건과 의료 전달 체계에 미칠 악영향이다. 졸업 예정자들까지 유급 대상에 포함됨으로써 내년에는 대부분의 한의대가 자칫하면 졸업생을 한사람도 내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별다른 묘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한방 병원의 인력난과 그에 따른 의료 공백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한방병원협회 장운영 부장은 “양방과 마찬가지로 한방에서도 병원내 수련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내년에 당장 필요한 수련의 숫자는 줄잡아 3백명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내년에는 아예 수련의를 충원할 수 없게 됐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한방 분야의 의료 공백 사태는 피할 수 없다”라고 걱정했다.

한의대생들의 무기한 수업 거부와, 이에 대한 정부의 무대책. 몇년째 계속되고 있는 한·약 분쟁은 한의대를 존폐 위기로 몰아넣으며 국민의 건강권을 직접 위협하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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