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정국, 여권 '자충수'로 확대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8.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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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게임” 확신해 실수…‘이대성 문건’ 잘못 독해
북풍 공작에 대한 새 정부의 수사는 처음부터 고난도 ‘정치 게임’이었다. 게임은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신 여권과의 물밑 암투에서 시작한다.

먼저 그동안 드러난 권씨의 행적부터 되짚어 보자. 권씨는 3월6일 이종찬 안기부장을 만났다. 권씨는 이 자리에서, 나중에 밝혀지는 이른바 ‘이대성 문건’이 존재함을 암시하면서 ‘수사를 확대하지 말라. 그러면 대선 때 북한 공작부서와 정치권 전체 사이에 이루어졌던 공작이 드러나 새 정부도 다친다’는 요지의 말을 전했다. 권씨로서는 ‘경고’였으나, 이부장에게는 ‘협박’이었다. 이부장은 이를 묵살했다. 현정부는 북풍 피해자이고 가해자는 구 여권이라는 것이 이부장을 비롯한 여권 핵심부의 일관된 인식이었다.

권씨는 3월8일 밤 이대성 전 해외조사실장을 국민회의 정대철 부총재에게 보내, 문건을 건넸다. 여권 핵심부에 전달하라는 뜻이었다. 비극은 이 대목에서부터 시작된다.

권영해의 잘못된 선택 ‘정대철’

권씨가 정부총재를 창구로 선택한 것은 정부총재가 지난 대선 때 국민회의 북풍대책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총재는 대선 당시에도 국민회의 북풍제거반의 보고 라인에서 빠져 있었다. 당시 국민회의에서는 천용택·정동영 의원 등이 흑금성을 채널로 하여 사실상 북풍 차단 작업을 주도했고, 그들이 DJ에게 직보하는 체계였다. 한마디로 권씨가 창구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정부총재는 처음에는 이씨가 구 안기부 상층부의 탄원서를 들고 온 것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정부총재 손에 들어간 문건은 6일간 ‘잠’을 잤다. 정부총재가 문건을 들추어보기 시작한 것은, 3월10일 이씨가 검찰에 이첩되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본 뒤부터였다. 순간적으로 ‘뭔가 있다’는 생각에 문건을 뒤적인 정부총재는 내용이 너무 엄청나 12일부터 당내 인사들과 상의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문건의 존재를 인지한 정부총재 등 국민회의 관계자들은 문건에 적시된 흑금성과 국민회의의 관계에 미처 주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흑금성이 박채서씨였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는 대선 기간에 박채서씨와 접촉했던 천용택·정동영 의원조차, 3월18일자 <한겨레>에 문건이 전면 공개된 뒤에야 대북 공작원 흑금성이 박채서임을 깨달았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요컨대 이대성 문건이 그 가공할 파괴력에 비해 어처구니없게도 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 손에서 6일간 머물렀던 것이다.

또한 정부총재 등 문건의 존재를 인지한 신 여권 인사들은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이 북풍 공작의 대가로 3백60만달러를 북한에 전달했다는 내용에만 주목했다. 이는 정부총재도 인정한다. 즉 새 정부는 북풍의 피해자이고 북풍 사건은 끝까지 사실 그대로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무튼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정부총재가 본격적으로 문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3월10일까지 문건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은 권영해·이대성·정대철 씨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즈음 엉뚱한 곳에서 북풍과 관련한 중대한 발언이 나왔다. 국민신당 이인제 고문의 발언이다. 3월11일 이고문은 당무회의에서 “대선 전에 어느 기관, 또는 누군가가 북한 정보기관과 접선해 거래했다는 것이 (북풍)사건의 본질이며, 돈까지 오갔다”라고 주장했다. 이고문의 발언은 사실상 문건에 나오는 정재문 의원 관련 부분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고문은 오직 세 사람밖에 모르는 내용을 어쩌면 그렇게 족집게처럼 꿰고 있었을까.

3월12일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의 발언도 예사롭지 않다. 이총재는 경북 의성지구당 창당대회에 참석해서 “이 정권은 북풍의 배후에 우리 당이 있는 것처럼 억지춘향을 부리고 있다. 무서운 정치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총재가 느낀 무서운 정치의 조짐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문건 내용과 관련한 어떤 정치적 흐름’을 사전에 감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인제·이회창 두 사람의 발언이, 권영해씨가 신 여권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내비쳤다는 ‘북한 공작부서와 정치권 전체 사이에 이루어졌던 공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가설은 지나친 상상일까. 이것도 이번 사태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이다.

여권과의 협상 노린 권영해

다시 시선을 권씨의 행적에 맞추어 보자. 정부총재는 갖고 있던 문건을 문희상 정무수석(14일)과 나종일 안기부 2차장(15일)에게 각각 건넸다. 애초 정부총재를 통해 여권 핵심부에 문건을 전달하려던 권영해씨의 의도가 ‘드디어’ 실현된 것이다. 이대성 문건은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신 여권에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애초 문건을 만든 목적이 신 여권과 협상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건을 전달받은 여권 핵심부가 대응책을 채 마련하기도 전에 일이 꼬여 가기 시작했다. 3월16일자 <한겨레>와 <조선일보>에 문건의 일부 내용이 보도된 것이다. 두 신문이 어떤 경로로 문건의 내용에 접근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권씨는 16일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사신을 보냈다. 10일 전 이종찬 부장을 만나 얘기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북풍 수사를 확대하면 새 정부도 다친다는…. 17일 이종찬 부장은 급히 청와대를 찾았다. 대책회의에서 내려진 결론은 ‘권씨의 협박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에 문건의 일부 내용이 보도된 뒤여서, 모든 언론사에 비상이 걸렸다. 정대철 부총재는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풍의 주체는 안기부가 아니라 정치권’이라는 요지로 발언했다. 나종일 차장도 이 날 국민회의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침내 18일자 <한겨레>가 문제의 문건을 공개했다.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처음에는 주로 한나라당의 북풍 공작 의혹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 땅의 정치를 망쳐 놓은 북풍에 대해서는 정치를 떠나 공정하게 밝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문건에 등장하는 정치인은 국민회의 소속이 훨씬 많았다. 사태가 여권에 불리한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수세에 몰렸던 한나라당은 이때부터 공세로 전환했다.

여권 ‘문서조작론’으로 급선회

이종찬 안기부장은 18일 국회 정보위에 참석해 정보위 위원들에 한해 문건을 비공개로 열람토록 했고, 동시에 문건 조작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여권 핵심부가 이와 같이 대응 방향을 정했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요컨대 문건은 내용의 성격상 여권이 조작론을 펴기로 결정하지 않고서는 절대 정보위원들에게 열람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일 저녁 이종찬 부장을 위시한 안기부는 각 언론사 사장을 불러 보도 협조를 요청했고, 이 날 밤 10시부터 20일 오전 2시까지 심야 대책회의를 열어 권영해씨를 구속하고 더 이상 사태를 확산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여권 핵심부가 문건을 넘겨받은 뒤, 4일이나 지나서 ‘뒤늦게’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 방향을 정한 까닭은 무엇인가. 여기서 하나의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즉 여권 핵심부조차 문건을 제대로 독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정대철→문희상·나종일로 이어지는 문건 전달 라인에, 대선 때 북풍 차단을 주도했던 천용택·정동영 의원이 있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또한 여권 핵심부가 자기들이 북풍 피해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북풍 수사를 ‘이기는 게임’으로만 인식했지 초기부터 사태를 관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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