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 신앙'에 미친 애틀랜타올림픽
  • 애틀랜타· 이교관 기자 ()
  • 승인 199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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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필품·호텔 요금·서비스료 폭등…올림픽 상업화·흑백 갈등 등 문제점 노출
 
근대 올림픽 탄생 100주년이 되는 ’96 여름 올림픽 개최지인 미국 애틀랜타를 처음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놀라게 만드는 것은 올림픽 열기가 아니다. 이 도시의 관문인 하츠필드 공항의 규모가 세계 최대일 뿐만 아니라 물동량도 세계 최대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하츠필드 공항을 벗어나 애틀랜타 시내로 들어가면서 올림픽을 알리는 포스터나 엠블렘을 찾기란 쉽지 않다.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자동차가 달릴 때 물보라가 일지 않는다는 최첨단 도로 곁에 늘어선 일본과 독일 기업들의 광고판 숲을 한참 헤치고 나서야 이곳이 올림픽 개최지임을 알리는 포스터 하나를 볼 수 있을 뿐이다. 1주일 앞으로 다가선 올림픽의 열기가 예상 밖으로 달아오르지 않은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패티 퍼킷양은 그동안 올림픽을 준비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 시민들이 올림픽에 대해 식상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느끼는 지겨움 하나만으로 올림픽에 대해 무관심에 가까운 이상 야릇한 분위기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같이 ‘썰렁한’ 분위기를 만든 주범은 바로 애틀랜타올림픽조직위원회(ACOG)다. 흑인 택시 운전사인 아마드 하산씨는 조직위원회가 올림픽을 맞아 수입을 늘리기 위해 각종 상품값을 두배 이상 인상하는 바람에 시민들이 생활비를 곱절로 부담하게 되었다는 불평을 털어놓았다. 이런 판국에 올림픽 열기가 높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다.

 
호텔 방 매점매석, 가격 ‘네 배’


조직위원회가 숙박·요식은 물론 주차료 등 여러 부문에서 가격 인상 정책을 편 것은, 물론 ‘올림픽 관광’의 수입을 늘리자는 데 목적이 있다. 이 때문에 애꿎게도 애틀랜타 시민들 역시 물가고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시민들이 해를 입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림픽을 계기로 한몫 단단히 잡겠다는 조직위원회의 의지는 눈물겨울 정도다. 특히나 조직위원회의 의지가 강력하게 관철된 부문은 호텔 객실 가격이다. 올림픽 대회 기간에 시내 호텔 객실 가격이 그 전보다 무려 네배 이상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숙박 시설 가격을 인상하기 위해 조직위원회가 펴고 있는 숙박 정책은 정말로 이 단체가 올림픽조직위원회인지 기업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조직위원회는 시내 호텔로부터 대회 기간의 예약권을 넘겨받았다.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애틀랜타를 찾는 외국인이나 미국의 다른 지역 방문객들이 호텔 객실을 구하기 위해 조직위원회에 예약 신청을 해야 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조직위원회는 호텔들이 올림픽 전에 받던 가격의 네 배에 달하는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

숙박 시설 매점매석과 마찬가지로 조직위원회는 주차료에서도 부당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조직위원회는 대회 기간에 경기장 근처에 주차 전쟁이 벌어진다고 강조하면서 하루 2백달러에 달하는 주차권을 팔고 있다. 이는 택시나 리무진 등 상업용 차량 사업자들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년째 애틀랜타를 찾는 외국 기업인들, 특히 일본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리무진을 운전하고 있는 서니 박씨는, 조직위원회에 만달러를 주고 주차권 50장을 구입했는데 도무지 황당해서 말이 안나온다고 털어놓았다.
조직위원회의 물가 인상 정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평소 1인당 8달러 정도 하는 나이트클럽 입장료가 대회 기간에 두배가 넘는 20달러로 인상되고, 쇼핑몰에서도 입장료를 받는다. 또 대회 기간에 식당의 메뉴가 올림픽 메뉴로 바뀌기 때문에 음식 값도 2∼3배 오르게 된다. 음식점들 역시 가격 인상에 따른 이익금의 일부를 조직위원회에 돌려야 한다.

이같은 조직위원회의 수입 증대 노력에 따라 이번 올림픽이 적자를 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얼마 전 조지아 대학 부설 시릭경제연구소는 올림픽조직위원회와 외부 방문객이 지출하는 직·간접 경비 23억달러가 약 28억달러의 파생 효과를 발생시켜, 총 51억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조직위원회의 물가 인상 노력을 가상히 여긴 탓인지 이 보고서는 무엇보다 숙박·위락·비즈니스 서비스·음식료업 등에서 경제적 효과를 약 17억달러 보게 된다고 전망했다. 게다가 올림픽은 일자리도 총 7만7천여 개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올림픽이 궁극적으로 애틀랜타 시 전체의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애틀랜타 시민은 거의 없다고 이 곳 최대 일간지인 <애틀랜타저널>(일명 <애틀랜타컨스티튜션>)의 한 기자는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그는, 또한 올림픽이 빈부 격차와 흑백 갈등이라는 두가지 문제를 더욱 심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직위원회가 올림픽 수익 사업권을 부자들에게만 준다는 점에서 부자들은 혜택을 입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의 아마드 하산씨도 “수익 사업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물가가 인상돼 생활비마저 올라갔다”라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 이의 최대 피해자는 흑인이다. 이미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애틀랜타 시 남쪽의 흑인가를 재개발하면서 많은 흑인 가구가 이주했다. 빈부 격차 확대가 흑백 갈등을 부추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패티 퍼킷양 역시 “흑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백인들은 여전히 부자라는 점에서, 올림픽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현상 심화는 인종간 갈등의 골을 깊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올림픽이 경제적으로 성공하더라도 흑백 갈등을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흑백 갈등의 기본적인 원인은 흑인과 백인 양측이 모두 하나의 공동 사회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아직도 백인들은 시 북쪽에 자리잡는 반면, 3백만 애틀랜타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흑인들은 남쪽에 집단 거주한다.

‘인류를 하나로’ 올림픽이 인종 갈등의 기폭제 노릇

애틀랜타 한인회 이병만 사무총장은 조직위원회가 흑백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의도적이지 않느냐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는 조직위원회가 애틀랜타올림픽의 실질적 목표를 ‘남부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에 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남북전쟁 이전처럼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백인이 누리던 남부의 영광을 되찾자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같은 점에서 올림픽으로 인한 인종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예전에는 인종 갈등을 그리 중요한 문제로 보지 않았던 사람들조차도 이 문제가 현재 이곳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태어난 곳이자 백인 우월주의자들인 KKK단이 창설된 곳으로 유명한 애틀랜타에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금 소리 없는 남북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인종 갈등을 비롯한 모든 장애를 뛰어넘어 인류를 하나로 화합시키자는 이상으로 탄생해 100년을 맞는 올림픽이 인종 갈등의 기폭제 노릇을 하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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