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포간첩 이광수 "침투 목적은 대통령 암살"
  • 이정훈 기자 ()
  • 승인 1996.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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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포된 이광수 “춘천 전국체전 개막식 연설 때 저격” 진술
 
잠수함을 이용해 강릉에 상륙한 무장 공비는 10월7일 김영삼 대통령이 춘천에서 개막된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할 경우 저격할 목적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은 안기부에서 신문을 받고 있는 생포된 공비 이광수의 진술을 통해 밝혀진 것으로, 얼룩무늬 아군 복장으로 위장한 저격조 3명이 총번과 제조국 이름을 지운 M16 소총으로 저격 임무를 수행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저격조가 상륙한 후 승조원과 잠수함은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좌초 사고가 발생해 전원 상륙하게 되었다고 이광수는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전한 정부 소식통은, 안기부가 이광수의 진술 내용이 사실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북한 인민무력부가 대변인과 판문점 대표를 통해 ‘백배 천배로 보복하겠다’는 위협을 계속하자, 10월2일 국방부는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발령했다고 한다.

김대통령이 10월3일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의 행동은 종전과 같이 단순한 위협이 아니고 심각하고 중대한 상황 변화’라고 지적한 것과, 4일 이수성 총리가 주재하는 ‘안보 및 치안 관계 장관 회의’와 권오기 통일 부총리가 주재하는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가 잇달아 열린 것, 그리고 7일 여야 영수회담에서 “북한 도발 때는 전면전을 불사한다”라는 김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게 된 것이 모두 이같은 정황 때문이었다.
 
안기부, 국방부에 ‘생포’ 요청


무장 공비가 침투한 목적이 확인된 후 정부의 북한 봉쇄 조처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제7차 북한 경수로 부지 조사단의 방북과 지난 10월1일 북한 남포공단에서 전원 철수한 (주)대우 직원의 재입북을 보류시켰고, 남북간 교역 제한도 검토하고 있다. 유엔에서는 의장 명의로 대북 경고 성명을 채택케 하려고 관련국 대표를 설득하고 있다. 또 북한이 고정 간첩을 동원해 요인 테러를 할 가능성이 있어 고성능 외제 소총을 국내로 밀반입한 조직을 검거하고(6일), 경찰 특공대로 하여금 테러 진압 훈련을 강화하도록 조처했다.

정부는 무장 공비 침투 목적을 사실대로 공개할 경우 국내 경제가 위축되고 북한과의 대화 창구가 완전 폐쇄될 가능성이 있어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또 안기부는 이광수의 진술을 검증하기 위해 도주중인 공비 1명 이상을 반드시 생포해 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했다. 그리고 춘천 체전은 경찰 경비를 대폭 강화한 상태에서 김대통령이 참석해 예정대로 개최하였다.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어 유화 국면이 조성되었음에도 74년 북한은 재일 교포 문세광을 시켜 박정희 대통령 저격을 시도해 육영수 여사를 절명케 한 바 있다. 강릉 사건 역시 침투한 의도가 밝혀진 이상 남북 관계의 긴장도는 가파르게 상승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아울러 북한 봉쇄 정도를 놓고 한·미 간에도 신경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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