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항거, 한여름에 부활
  • 광주·나권일 주재기자 ()
  • 승인 1995.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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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책임자 무혐의 처분’에 분노… “특별법 제정해 처벌하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등 5·18 책임자들의 내란 혐의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 방침이 전해진 뒤 광주 시민들은 분노와 함께 현 정부에 대한 커다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5·18 민중항쟁동지회 김현채 사무국장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 방침과 관련해 “기소유예도 아니고 ‘무혐의’라니 어이가 없고 황당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5·18 기념재단 이사장이자 광주항쟁 당시 수습위원을 맡았던 조비오 신부는 “얼마나 화가 나는지 말이 제대로 안나온다. 한국 검찰은 양심이나 정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라는 말로 검찰과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정권 타도 투쟁 벌이겠다”

적어도 5·18 문제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는 것이 광주의 정서이다. 민주당 전남도지부(지부장 유인학)는 성명에서 “검찰의 무혐의 결정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과 같다. 지방 선거에 패한 뒤 현 정부가 5·6공 세력과 다시 손잡고 국면 전환을 꾀하려는 공작이다”라고 맹공했다. 민자당 광주시지부(지부장 이환의)도 “검찰 결정에 대해 광주 시민과 심정적으로 입장을 같이한다. 5·18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전두환·노태우·최규하 전 대통령을 내란 혐의로 광주지검에 단독 고발한 주천식 옹(71·전 광주전남민주노인회장)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삭발해 광주 시민의 분노를 대변하기도 했다.

남총련(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의장 이동석)은 이러한 항의와 규탄을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겼다. 7월8일 정오 무렵 광주시 지산동 광주지검 청사 주변은 ‘학살자를 처벌하라’는 구호 속에 매캐한 최루가스와 쇠파이프, 돌멩이가 난무했다.

올해 별탈 없이 평화적으로 보낸 ‘오월’이 한여름에 다시 과거의 격렬한 시위로 재현될 조짐을 보인 것이다. 돌멩이를 든 한 학생은 “학살자에게는 공소 시효가 필요없다. 김영삼 정권 타도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날 학생들의 ‘검찰청 응징’ 계획은 ‘남총련식 항의’선에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 날의 공방전은 최소한 공소 시효가 만료되는 8월15일까지 계속될 투쟁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남총련의 주장이다.

5·18 관련 피고소·고발인 58명에 대한 불기소 처분이 검찰의 확고한 방침임을 접한 재야와 관련 단체들은 대규모 ‘상경 투쟁’까지 감행하는 강경 대처를 결의했다. 5·18 관련 단체 대표들은 7월14일 상경해 첫 규탄 집회를 가진 데 이어 서울의 재야 단체들과 함께 기소 관철을 요구하는 농성에 돌입할 계획이다.

민주주의민족통일광주전남연합, 5·18 광주민중항쟁연합, 5·18 기념재단, 5·18 민중항쟁동지회 등 5월 관련 단체들은 공소 시효에 관계없이 기소 촉구 투쟁을 범시민적으로 벌여나간다는 방침 아래 YMCA 등 각 사회단체와 민주당 시도 지부, 시도 의회, 민선 단체장 등을 포함한 ‘광주 명예 회복과 5월 학살자 기소관철 범시민대책위원회’(공동대책위원장 조비오 신부)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금남로 일대에서 대규모 항의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아울러 ‘5·18 국민위원회’(상임의장 김상근 목사)와 공동으로 ‘권력을 이용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에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범국민적 입법 청원 운동을 병행할 방침이다. 범시민대책위는 이와 함께 신속히 항고·재항고·헌법소원 등 모든 법적 대응을 강구하고, 야당 국회의원 전원의 서명으로 ‘5·18 책임자 기소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민주당에 권고하기로 했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은 사실상 5·18 수사에 대한 현 정부의 정치적 결론이라는 점에서 광주 시민과 재야의 커다란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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