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북 수교 왜 서두르나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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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에 ‘제 목소리 내기’ 속셈…4월중 교섭 재개할 듯
일본의 연립 여당 3당은 지난 3월30일 북한 노동당과 ‘4당 합의서’를 교환하고 국교 정상화에 관한 교섭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북한과 일본 정부는 중단했던 수교 교섭을 이달 중에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자민당 대표로 이 합의서에 서명한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知雄) 전 부총리는 귀국후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로, 이른바 ‘전후 보상문제’라는 걸림돌을 제거했다는 점을 들었다. ‘전후 보상문제’란 90년 9월 자민·사회당이 ‘전후 45년 간의 적대 행위를 보상하겠다’고 북한측에 약속한 사항이다. 이 합의 사항의 준수 여부를 둘러싸고 북한과 일본 정부는 92년 11월 북경에서 열린 제8차 회담에서 격돌해 그후 수교 교섭이 중단돼 왔다.

북한의 김용순 서기는 이번 평양 회담을 앞두고 일본의 연립 여당에게 이 합의 사항을 재확인하라고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평양에서 발표된 ‘4당 합의서’에는 이 합의 사항이 ‘역사적 사실’로만 기재돼 있어, 북한과 일본이 수교 교섭을 서두르기 위해 이 문제를 일단 덮어두었다는 인상을 짙게 풍겼다.

북·일 수교 교섭의 또 다른 걸림돌이던 이른바 ‘이은혜 문제’에 대해서도 양측은 아무런 언급 없이 합의서를 교환했다. 이은혜 문제란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사건의 주역 김현희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납북 일본인 이은혜의 신원 확인을 둘러싼 다툼이다.

또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관해서도 양측은 합의서에 아무런 언급 없이 무조건 수교 교섭을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연립 여당 3당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발족을 계기로 북한 핵 문제는 북한과 일본의 ‘2자간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한·미·일 간의 ‘4자간 문제’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 근거로 일본의 연립 여당과 외무성은 이번 회담에 앞서 일본의 대북 접근을 미국 정부가 용인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즉 작년 10월 제네바 합의 이후 미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 북한과 수교 교섭을 재개하라고 종용해 왔다는 것이다.

“북한 전략에 말렸다” 비판

그러나 일본의 ‘제 목소리 내기 작전’은 그 이전부터 면밀히 준비되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북·일 수교 교섭 재개를 위한 접촉이 시작된 것은 작년 8월 북경에서였다. 이 접촉은 김일성 사망 직후 북한의 고위 관리가 일본측에 쌀 수출 문제를 타진해 옴으로써 이루어졌다. 이것은 미·북한 간에 경수로 지원 문제가 타결되기 2개월 전쯤의 일이다.

그후 올 2월 중순 일본과 북한 당국자들은 싱가포르에서 극비 회담을 가졌다. 일본측 참석자는 호리 고스케 전 문부성 장관, 북한측 참석자는 김용순 서기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 국제부 부부장이었다. 한신 대지진 때 김정일이 보낸 의연금 백만달러에 관한 감사 표시와 일본에 대한 북한 쌀 수출 문제가 거론된 것으로 밝혀졌으나, 실은 이 때 수교 교섭 재개에 기본적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는 것이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 내에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에 자금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일본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미국으로 하여금 안방을 건너지르게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 일각에서 이런 급격한 대북 접근을 경계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4월21일인 경수로 계약 시한을 앞두고 미묘한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의 손을 들어주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북한은 연립 여당 방북단을 받아들이는 사전 접촉에서 우당인 사회당을 완전히 배제하고 자민당을 집중 공략했다. 사회당은 이런 사실을 알아차리고 자민당에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자민당이 북한의 각개격파 전략에 간단히 넘어가 수교 교섭 재개를 약속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북한과 일본이 수교 교섭을 4월중에 재개한다고 해서 양측 사이에 놓인 현안 문제들이 금방 타결된다는 보증은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전후보상, 이은혜, 핵 문제 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북한과 일본은 이제 ‘대장정’을 시작하려는 출발점에 서 있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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