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북송 일본인처 고향 방문 극비 제안
  • 南文熙 기자 ()
  • 승인 1997.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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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일본 정부에 비밀리 제안…빠르면 8월부터 내보낼 듯
북송 일본인 처의 고향 방문과 관련해 북한이 최근 일본 정부에 충격적인 극비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소식에 정통한 도쿄의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이 지난 6월 말에서 7월 초 일본 정부에, 일본인 처 3백~5백 명 정도에게 고향 방문을 허용하겠다는 제안을 비밀리에 해왔다”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또한 북한측이 이같은 내용을 7월15~20일 대외에 공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측의 이같은 제안은 그 직전에 북경에서 열린 북·일 간의 비공개 접촉 직후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번 북경 접촉은 그동안의 접촉 창구였던 외무성 과장급과는 다른 경로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채널이었는지 현재로서는 밝히기 곤란하다고 이 소식통은 말했다.

대가로 식량과 비료 요구

고향 방문 일정은, 우선 7월20일을 전후해 북한측이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8월부터 본격적인 방문이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방문 방법은, 50~백 명 단위로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과 일본은 앞으로 있을 정부간 접촉을 통해 이 문제를 본격 협의할 것이라고 한다. 북·일 정부간 교섭은 7월 말부터 시작되어, 8월 초 뉴욕에서 4자 회담의 예비 회담이 열리고 난 이후 본격 협상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북한측은 대규모 고향방문단을 허용하는 대가로 일본에 식량과 비료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구체적인 조건은 앞으로 있을 정부간 교섭에서 협의하자고 했다고 한다.

북한측의 이번 제안은 무엇보다 그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을 만큼 크다는 점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5월 중순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온 이후 그동안 일본 정부 내에서는 ‘북한이 처음에는 3명 정도, 그리고 나중에는 20~30명에게 고향 방문을 허용하면서 생색을 내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쿄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은 이미 지난해 세 차례에 걸친 내부 조사에서 대상자를 약 3백명 정도로 선정해 두었다고 한다. 이들은 사상성 등에서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명된 사람들이다. 현재 북한측은 이 숫자를 5백명으로 늘릴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도, 일단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초기에는 ‘확실한 사람’들을 보내고 후반부에 다른 사람들을 섞어 보내는 방법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3백명이 되든 5백명이 되든, 애초 예상을 10배 정도 웃도는 대담한 결정을 통해 북한측은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0,60년대 재일 교포 북송 사업 기간에 남편을 따라 북한에 들어간 일본인 처 문제는 그동안 일본 외교의 커다란 숙제였다. 당시 북송된 5천~6천 명 중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사람은 약 1천8백명 정도이다. 일본 정부는 40년간 이들의 일시 귀국을 북한측에 끈질기게 요구해 왔고, 이 문제는 지난 91,92년 북·일 수교 교섭 과정에서도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제한된 숫자나마 이들에게 일시 귀국이 허용되면 일본 사회에 엄청난 파문이 예상되고, 일본인들의 북한에 대한 이미지 역시 크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유엔을 통한 대북 지원을 결정한 바 있는 일본 정부는, 8월 초 4자회담 예비 회담이 끝나고, 북한측과 일본인 처 고향 방문 협의가 본격화 하는 것에 맞추어, 북한에 식량 50만t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일본은 또한 이 여세를 몰아 수교 교섭 재개라는 본질 문제로 접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고향방문단 교섭이 기존 실무 채널이 아닌 제3의 채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 역시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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