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향우! 좌파 14년 막내린 프랑스
  • 卞昌燮 기자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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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우파 시라크 대통령 당선…남은 정적은 ‘높은 실업률’
지난 5월7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4천만 프랑스 유권자는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 대신 `‘변화’를 주창한 우파 공화국연합(RPR)의 자크 시라크(62) 후보를 택했다. 81, 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연달아 패했던 시라크 후보가 마침내 엘리제궁에 입성하게 됨으로써 프랑스에는 앞으로 7년 동안 보수 우파 시대가 열리게 됐다.

프랑스의 현행 헌법상 대통령 권한은 자유 세계 그 어느 나라 대통령의 권한보다 막강하다. 외교와 국방에 관한 한 특히 그렇다. 시라크 당선자는 93년 총선에서 우파가 압승을 거둔 덕분에 이미 하원에서는 80% 이상의 지지를 확보한 상태이고, 상원에서도 3분의 2가 그의 편에 서 있어 내치에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은 14년 집권 기간에 자파 소속 의원들이 의회에서 안정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좌우 동거 내각을 짜야 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었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보면 시라크 당선자가 앞으로 국정을 이끌어 가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그의 앞날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은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이었던 12%를 웃도는 실업률을 끌어내려야 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감원계획 철회 등 요구 조건을 내걸고 파업을 벌인 국내 항공사 에어 앵테르, 우체국 및 국영 철도 등 공공기관 근로자들이 11일부터 이달 말까지 잇달아 파업을 재개할 예정인 것도 시라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요소이다.

시라크는 선거전에서, 전체 노동 인구의 12%에 이르는 3백만 실업자를 대폭 줄이기 위해 기업에 무거운 짐이 돼 온 사회보장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고 법인세를 낮추겠다고 공약했었다. 또 1년 이상 놀고 있는 장기 실업자를 고용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2년 동안 1인당 월 2천프랑(약 32만원)을 보조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고용 유도 계약’도 제시했다.

현재 약 6천9백프랑(약96만원)인 최저 임금을 7월1일부터 상향 조정하겠다는 공약도 했는데,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소득세와 부가가치세(현재 18.6%)를 인상해 충당할 계획이다. 그러나 소득세 인상은 경기 활성화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경기가 좋지 않을 경우 시라크 정부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재정 적자를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재정 적자 문제는 97년 단일통화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구상과 직접 관련이 있다. 사회당 정부는 유럽연합의 목표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6%에 이르는 재정 적자를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문제에 대해 시라크는 ‘단일 통화를 이루기 위해 유럽연합은 99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같은 발언을 감안할 때 그는 재정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선거 공약은 기어코 실천할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 재개 땐 외교 마찰 예상

시라크는 사회당이 14년 집권한 동안 ‘만신창이가 된’ 프랑스를 재건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신드골주의자이다. 따라서 외교 정책에서는 전임 미테랑 정부보다 더욱 독자적인 노선을 취할 것이 확실하다. 단적인 예로 그는 프랑스가 모의 핵실험장치를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실험을 중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무책임한 일’이라며 핵실험을 재개할 뜻을 분명히했다. 이는 미테랑 정부의 방침과는 크게 다른 것이어서 미국 등 다른 핵강대국들과 외교 마찰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민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시라크는, 파리 시장만 17년 동안 지낸 프랑스 정계의 거물이다. 그는 파리정치대학과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한 뒤 퐁피두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35세 때 고향 코레즈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여섯 번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오랜 의원 생활 동안 그는 3개 부처의 장관을 지내고 총리를 두번 역임했다. 그는 드골 대통령이 68년 만든 공화국수호동맹(UDR)을 확대해 우파 최대 정당인 공화국연합을 창당하면서 정계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이제 14년 만에 우파 시대를 맞이한 프랑스가 시라크 신임 대통령 치하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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