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 점수보다도 낮은 노인 복지
  • 李文宰 기자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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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이 지나가고 있다. 몇해 전에 생긴 아버지의 날(5월1일)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에 생긴 어린이날(5일), 그리고 어머니날에서 바뀐 어버이날(8일)에 이르기까지 현대의 세시풍속은 5월 초순에는 가족을 생각하라고 ‘적극’ 권장한다. 적극적인 것에는 문제가 있으니, 거개의 적극적인 태도는 그 뒤로 무엇인가를 숨기려 한다.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배경에는 가정의 위태로움이 깔려 있다. 어린이날을 제정한 것은 더 이상 어린이가 학대 받아선 안된다는 웅변이고(동학 사상에서 비롯되었지만), 4년 전에 생긴 아버지날은 부성 부재에서 비롯한 것이며(90쪽 특집 기사 참조), 73년에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바뀐 것은 아버지 역시 어머니 못지 않게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희생 당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린이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아버지로 확대되어온 사회(국가)의 배려는 그러나 지금, 멈춰 있다. 모든 정책은 젊음과 미래에 맞춰지고 있다. 5월의 신록만을 강조하는 이 ‘노화 콤플렉스’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깃들어 있다. 그러나 노화를 기피하는 집단 무의식은 보다 냉엄하다. 생산성 제일주의, 경쟁주의, 패권주의는 그 어떠한 늙음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늙음에는 부가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공익광고’는 우리의 평균 토플 점수가 세계 1백31 위라면서, 어떻게 세계화를 이룩할 수 있겠느냐고 질타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 노인 정책으로 눈에 드러나야 할 우리의 사회복지 정책 수준은 토플 점수보다 훨씬 아래인 것 같다.

적극적인 미래 지향은 적극적인 과거 지우기일 수 있다. 한 해가 내내 앞만 내다보는 5월만일 수는 없다. 뒤돌아 보아야 할 11월도 분명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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