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짓고 이사한 안기부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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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청사 이전으로 남산 시대 마감…첫 방문자들에게 ‘본 것 말하지 말라’ 서약서 받아
국가안전기획부(부장 권영해)가 최근 34년 간의 ‘남산 시대’를 마감하고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마련한 새 청사로 이전했다. 안기부는 그동안 청사가 서울 남산과 이문동에 분산되어 있어 예산·인력 낭비와 업무의 비능률성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또 서울시가 정도 6백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으로 인해 남산 청사 이전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안기부는 그동안 ‘새로운 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는 새 청사’ 건립을 추진해 4년여 만에 완공을 보게 됐다.

안기부에 따르면, 새 청사는 본관과 부속 건물 세 동으로 이루어진 정보화(IBS) 빌딩으로서 빌딩관리 자동화(BA), 사무 자동화(OA), 최신 정보통신망(TC) 등 세 가지 첨단 기능이 종합되어 연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안기부는 또 신청사의 기본 설계 자체가 미래 기술을 수용해 확장이 가능하도록 돼 있어 21세기와 통일 시대의 정보 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미래형 건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안기부가 청사 이전을 마침에 따라 남산 청사는 부지와 건물이 모두 서울시에 이관되고, 이문동 청사의 부지와 건물은 문화재관리국에 반환된다. 단 이문동 지역의 일부 부지 및 정보학교 건물은, 일반 공무원을 대상으로 확대 개편한 ‘국가정보연수원’이 당분간 사용할 예정이다.

안기부(중앙정보부 시절 포함)는 지난 34년 동안 19명의 부장이 거쳐가는 등 빈번한 수장 교체로 업무 발전의 지속성이 결여되기도 했으며, 수사권 남용과 정치 관여 등 본연의 업무를 벗어나는 활동으로 인해 국민에게 불신과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새 청사로 이전한 안기부가 ‘새 부대’에 ‘새 술’을 얼마나 부어 남산 시대의 어두운 이미지를 씻고 새로운 안기부상을 정립할지 관심거리이다.

안기부는 “새 청사 이전을 계기로 국민에게 비친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완전 불식하고 이름 그대로 ‘국민에게 안기는 안기부’로 탈바꿈하고 열린 사회를 맞아 국민에게 한 걸음 다가서는 ‘열린 안기부’로 변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기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방자치 선거 연기를 위한 여론 탐색과 조정 업무를 추진한 것이 밝혀져 정형근 제1차장(현 민자당 부산 북구 지구당위원장)이 전격 경질되는 홍역을 치렀다. 또 최근 새 청사 이전을 앞두고 그동안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마약·국제 범죄 및 대테러 업무의 활성화를 위한 수사권 확대를 꾀하고 있어 이에 반발하는 검찰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전 후 일성 “수사권 확대 필요”

그동안 안기부는 공산주의 국가가 무너진 이후 예상되는 ‘국가 대 국제 범죄조직과의 미래전’에 대비한 국가의 테러 위기 관리 능력을 배양하는 데 힘써 왔다. 따라서 안기부측은 국제 조직 범죄가 국가 안보와도 관련이 있는 만큼 안기부의 정보 능력을 수사에 연결해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논리를 편다. 통합 청사 이전을 맞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안기부는 ‘국제 범죄 및 대테러 관련 수사 기능을 확보하지 못해 효율적인 업무 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권 확대론의 배경에는, 정보는 안기부가 수집하고 검거 실적은 유관 기관이 올리는 현실에 대한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안기부의 수사권 확대 문제는 결국 ‘직속 상관’인 김영삼 대통령과 여론의 향배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새 청사가 맞이할 공식적인 첫 손님도 김영삼 대통령이다. 안기부는 그 뒤 10월 중순께 언론사 사회부장과 편집국장 등을 초청해 청사 일부를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다. 이는 당초 예정보다 늦어진 것이다. 대통령의 방문 일정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기부는 이미 지난 9월22일 비공식적인 ‘손님’들을 받았다. 임수경 방북사건과 관련해 장기 수배해 온 정은철씨(연세대 85학번)가 그중 1명이다. 정씨는 지난 8월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기 위해 여권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체포돼 안기부 새 집의 ‘첫 손님’이 되었다. 안기부는 또 정씨를 접견한 변호사들에게서 새 집에서 본 어떤 것도 밖에서 말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새 집을 구경한 손님들의 말을 빌리면, ‘시설은 좋아졌으나 손님 접대는 예전 같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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