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깃발 어디로 펄럭이나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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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게양 중단 방침에 회원들 반발…‘정부 지원’ 겨냥한 행동인 듯
서울시가 새마을기 게양을 중단하기로 한 방침에 대해 새마을 조직의 반발이 거세다. 새마을운동중앙회 서울시지부(회장 이재호) 회원 6천여 명은 9월22일 아침 서울 종묘공원에서 항의 집회를 연 데 이어, 일부 회원들이 구지회 방역 차량 25대를 동원해 서울시청 주변을 돌며 소독 연기를 내뿜고 시위를 벌였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10월1일부터 시청과 산하 본부 및 사업소에서 새마을기 게양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는 태극기를 기준으로 왼쪽에 새마을기, 오른쪽에 서울시청 마크가 새겨진 깃발을 게양해온 관례(내무부 지침)를 깨고 새마을기 대신 25개 자치구(구청)기를 번갈아 달기로 했다. 서울시가 이같은 결정을 한 배경은 조 순 시장과 이해찬 부시장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엿볼 수 있다.

조시장은 9월18일 서울시 간부회의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새마을운동이 진행되던 당시의 가치관인 ‘잘살아 보자’는 지금 시대에 맞지 않다. 지금은 환경 보존과 안전 복지가 더 강조되어야 하며 차라리 환경 안전과 복지를 위한 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해찬 부시장도 9월20일 서울시의회 시정질의 답변에서 “새마을운동은 70년대 개발 시대에 필요했던 관 주도 사회운동으로 오늘날의 자치와 자율 참여라는 다원주의적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다”고 밝혀, 이를 철회하라고 주장하는 일부 시의원들에게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서울시의 이같은 방침은 법률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 공공기관에 새마을기를 달도록 규정한 지침은 76년 5월에 내려진 총무처 의정 131호 ‘국기 게양에 관한 국민계몽자료’에 근거한다. 이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회관, 새마을사업장, 각급 공공기관에 새마을기를 게양하도록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내무부도 “새마을기 게양은 내무부 지침사항이므로, 공공기관에 깃발을 다는 문제는 민선 자치단체장의 자율적인 결정에 달려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서울시 결정, 법적으로 문제 없어

실제로 이미 지난 8월 초부터 강남·송파 등 일부 구청에서는 종래의 서울시기가 사라지고 구기가 나부끼기 시작했으며, 일부 구청에서도 새마을기가 사라졌다. 또 전라북도에서도 새마을기 게양 을 중지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고 부산시는 예산 지원 중단 방침까지 밝혔다.

그런데도 새마을운동 조직이 서울시만을 상대로 이처럼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온 이른바 관변 단체(정부는 국민운동 단체로 지칭)에 대한 예산 지원 중단 방침이 최근 사실상 변경된 것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변 단체에 대한 지원 중단은 김영삼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다. 이회창 전 총리도 이 공약을 받들어 내각에 관변 단체에 대한 지원 중단을 지시한 바 있다. 또 관변 단체에 대한 국고(또는 지방 예산) 보조금을 95년에 절반으로 줄이고 96년에 전면 폐지키로 한 정부 방침에 따라 올해에는 △새마을운동 관련 단체 97억원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28억6천만원 △자유총연맹 11억원 등이 지원되었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내년 예산에도 △새마을연수원 운영비 20억원 △자유총연맹 운영비 21억원(공보처 신청)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운영비 20억원 등의 보조금을 책정하고, 재경원도 당초의 전액 삭감에서 최근 지원 쪽으로 선회함에 따라 내년에도 정부의 예산 지원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국민회의는 ‘내년 총선을 관변 선거로 치르려는 기도’라며 지원 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어 당장 이번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회장 이규이)측은 현재 전국 새마을지도자 궐기대회와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하는 등 반발 기세를 수그러뜨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이 이들의 궐기대회를 어떻게 볼지, 또 관변 단체 예산 지원 중단을 주장하는 다른 순수 민간단체들이 역으로 서명운동을 벌일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심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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