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파먹은 PK에 면죄부
  • 김 당·李哲鉉 기자 ()
  • 승인 1995.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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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 지역 1백54만평 불법 훼손 ‘추후 허가’…TK들 “우리도 추인해 달라”
김영삼 정부에서 행정부와 군부 요직을 경남고 출신이 장악했다는 것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성문 헌법 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나 불문 헌법 1조1항은 ‘대한민국은 경남고 동문 공화국이다’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가 93년 12월31일 건설부(현 건설교통부) 관계 규칙을 개정하여 경상남도와 부산광역시 지역에서 6백31건 1백53만7천평에 불법으로 조성한 과수원을, 불법 행위에 대한 법적 조처 없이 추인할 수 있게 했다는 특혜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당시 건설부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선별적으로 PK지역에 한해 그린벨트 훼손을 추후 허가해, 대통령을 배출한 ‘PK성역’에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건설교통부가 9월19일 국회 건설교통위 오 탄 의원(새정치국민회의)에게 제출한 ‘전국의 개발제한구역 지정 현황’에서 밝혀졌다.

경남도지사가 부산 시민의 허파 노릇을 하는 그린벨트를 훼손하면서까지 불법 조성한 과수원의 양성화를 지시한 경위는 이렇다. 경남도 의회와 양산군수로부터 불법 조성한 과수원을 양성화해 달라고 시달림을 받은 당시 윤한도 경남도지사는, 93년 2월10일 건설부장관에게 ‘불법 조성 과수원이 현행 규정에 적합할 경우, 추인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고병우 당시 건설부장관은 93년 2월19일 공문을 통해 ‘개발제한구역내 불법으로 조성한 과수원에 대하여…고발 조처 및 단속 소홀에 따른 필요한 조처를 취한 후…구역 주민의 민원 해소 차원에서 귀도가 관계 규정에 의하여 필요한 조처를 취하시기 바랍니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불법으로 과수원을 조성한 연도가 75년과 90년 사이여서, 관련 법규 위반자의 공소 시효가 3년, 공무원 징계 시효가 2년임을 비춰볼 때 고발 조처나 징계 대상은 원래부터 있지도 않았다. 실제로 경상남도가 93년 11월 ‘개발제한구역내 불법 조성 과수원 추후 허가 건의’에 서명한 담당 과장에서부터 도지사까지 관련 고위 공무원 7명에 대한 고발이나 처벌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93년 김우석 장관 취임(12월23일) 직후인 12월31일 건설부는 ‘도시계획법 시행규칙과 개발제한구역 관리규정 제8조 1호’에 나오는 개간이 가능한 지면의 경사도 허용기준치를 15도 미만에서 21도 미만으로 상향 조정하여 개정함으로써 부산·경남 지역 불법 조성 과수원에 대해 추후 허가한 것이다. 당시 경상남도 김혁규 도지사가 취임한 날짜는 93년 12월28일이다. 현재 민선 경남도지사이기도 한 김혁규씨가 93년 도지사 취임 후 제일 먼저 시작한 업무가 ‘불법 행위에 대한 추인’인 셈이다.

발 없는 말이 역대 정권의 정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까지 달려오는 데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구·경북 지역 그린벨트내 과수원 불법 조성자들은 ‘전국 그린벨트 주민 권리회복추진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관할 구청에 ‘우리도 추인해 달라’고 청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94년 11월10일과 12월29일 각각 경상북도지사와 대구직할시장은 경상남도와 같은 내용의 건의를 건설부에 올렸다.

그런데 이에 대한 94년 12월19일 건설교통부 회신 내용을 보면 ‘도시계획법령상 개발제한구역내 불법 토지 형질 변경을 추인하는 규정은 없으며, 동 행위를 양성화하는 것도 구역관리 정책상 수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다만 위법 행위자에 대한 고발과 관계공무원의 단속 소홀에 대한 문책 등의 조처가 있었고…원상복귀 후 재허가에 따르는 경제적 손실 등을 감안하여 관할 허가권자가 합목적적으로 판단·처리할 수 있을 것이나, 불법 행위를 방치 또는 조장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구역 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공소 시효와 처벌 시효가 지난 상황에서 고발이나 처벌 조처가 있을 리 없었고, 이미 심어져 있는 과일 나무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추후 허가를 받는 것 자체가 여우 보고 호리병 속 생선을 먹으라는 것과 같았다. 경북도청 도시계획과의 관계 공무원은 “이것은 사실상 추후 허가 조처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불법 조성된 과수원에 대한 추후 허가 건수는 거의 없었다.
다른 지역에선 추후 허가 거의 없어

이러한 지역 차별은 같은 기간 다른 시·도에서 그린벨트내 불법 조성 과수원의 추후 허가 조처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특정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중앙 부서의 신규 허가 조처나 법률 적용 변경이 있으면, 다른 지자체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의 공문이나 지침을 내리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경남·부산 지자체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이러한 내용의 허가 변경 지침이나 공문을 받은 적이 없다. 제주도만 예외적으로 관련 공문을 받아 94년 6월1일부터 올해 5월30일까지 불법 조성 과수원 5백여 건에 대해 추후 허가 조처를 하였다.

91년부터 95년 7월까지 같은 기간내 전국 시·도별 개발제한구역내 행위 허가 내역을 보면, 부산시는 93년을 기점으로 전년도보다 무려 8배 증가한 1백1만2천8백10평, 94년에는 1백4만3천30평의 면적에 대해 행위 허가를 하였다. 같은 기간 서울시의 행위 허가 면적보다 4~5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경남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연평균 30만평 정도 행위 허가를 해온 경남이 93년 말 완화 조처 후 94년도에는 총 1백54만4천평이 넘는 면적을 허가해 전년과 비교하여 약 5배, 전국 2위의 실적을 올려, 경기도 및 부산시와 더불어 그린벨트 훼손을 주도했다.

98년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부산시는 관련 시설 신축을 명분으로 이 지역 그린벨트를 훼손할 것이 예상된다. 또 부산의 경우 이미 서울을 본뜬 위성 신도시 건설을 발표한 바 있다. 지방자치제가 정착되면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거 기간에 제시한 각종 지역개발 공약을 이행하고 부족한 지방세수원을 확보하려고 그린벨트를 훼손할 것도 우려된다.

그러나 그린벨트는 도시의 무리한 확산을 방지하고 주민에게 쾌적한 자연 환경을 보장하는 생존의 보루이다. 도시화와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환경 오염이 심해지는데 도시의 허파 노릇을 하고 쾌적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그린벨트를 정권의 이해에 따라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환경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지적한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자연 환경은 ‘무한’히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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