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사 마약, 국내 밀매단 또 있다
  • 丁喜相 기자 ()
  • 승인 1995.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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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인 수입·판매망 검거로 드러나…또 다른 국내 조직 암약 가능성 커
최근 쿤사 마약이 한국에 상륙해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성동경찰서는 쿤사로부터 헤로인 3.5kg(시가 1천4백억원)을 국내에 밀반입해 판매하던 윤우근씨(38·보석가공업)와 판매책 서상봉씨(31·건축업)를 체포해 구속했다. 경찰 조사 결과, 주범 윤우근씨는 92년부터 세계 최대의 헤로인 공급 기지인 쿤사 지역에서 보석 가공 공장을 운영하며 쿤사와 만났다. 그 뒤 사업이 어려워지자 쿤사측으로부터 헤로인을 넘겨받아 국내에 판매하다가 적발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 <시사저널> 취재반이 쿤사 마약 왕국에 잠입해 그 실상을 국내에 최초로 알리면서(제224·225호) 쿤사가 한국 마약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지만 우리의 대비는 허점투성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은 그같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시사저널>은 당시 현지에서 쿤사군 정보 관계자와 인터뷰하여 ‘쿤사 지역에 출입하면서 헤로인을 거래하는 국제적인 중개상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큰 중개상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쿤사 지역에 보석상 외에도 한국의 웅담·호피·장식용 고목 밀수업자들이 관광객으로 위장해 드나드는 실태를 보도했다. 아울러 이들이 쿤사가 관할하는 미얀마 샨 주에서 태국 방콕, 또는 중국 운남성을 통해 서해 공해상으로 마약·보석 따위를 비밀리에 공급하고 있으므로 국내 수사 당국에 이에 대한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번에 ‘처음’ 적발된 국내 헤로인 공급 사건도 바로 쿤사가 지배하는 몽마이 지역에서 보석 가공 공장을 운영하는 윤우근씨가 주도한 마약 범죄였다.

국내 보석 밀수업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쿤사 지역에 들어가는 이유는, 이곳에 루비·사파이어 광맥이 무진장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곳 보석 광산은 현재 미얀마 정부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쿤사가 주로 장악하고 있어 치안 부재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 보석업자들은 쿤사 진영의 비밀 통로를 통해 쉽게 드나들 수 있다. 이 보석 밀수 루트는 쿤사가 정제한 헤로인이 세계로 빠져나가는 관문이기도 한데, 지난해 <시사저널> 취재반은 이 루트 일부를 이용해 쿤사 지역에 잠입했다.

문 철군 변사 사건 관련 의혹도

그러나 당시 국내 검경 등 마약 수사 당국은 ‘아직 국내에서 헤로인 판매·소비 조직을 적발한 예가 없기 때문에 쿤사 마약이 한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국제 마약조직에 대한 국내 수사 당국의 사태 인식이 얼마나 안일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이번 쿤사 마약의 한국 진출이 단지 최초로 수사망에 걸려든 것일 뿐 제2, 제3의 마약 루트가 존재할 가능성은 크다. 그 근거로 쿤사 지역에서 비밀리에 입수한 사진(왼쪽)을 들 수 있다. 이 사진은 93년 2월 쿤사의 60회 생일을 맞아 한 한국인이 쿤사와 독대한 뒤 쿤사가 베푼 주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다(사진은 지난해 취재반이 쿤사 지역에 잠입하면서 입수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이 한국에 헤로인을 들여왔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 쿤사와 상시로 만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쿤사와 독대할 정도인 외국인들은 주로 거물급 국제 마약 중개상들이다.

이런 실정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번에 쿤사와 만나 마약을 들여왔다가 적발된 사람들을 ‘사업상 돈이 필요해 마약에 손댄 단순 중개자들’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결론은 쿤사에 대한 정보 부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쿤사는 단순한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정예 군대 4만 명을 거느리고 인구 8백만명에 면적이 남한 크기와 비슷한 샨 주의 대부분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사람이다. 연간 5천t 안팎의 헤로인을 생산하는 그는 마약왕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극복하고 독립 지지를 얻기 위해 최근 들어 자기는 더 이상 헤로인을 거래하지 않겠다고 국제 사회에 선언했다. 이런 쿤사가 대외 이미지에 결정적 타격을 입을지도 모를 ‘헤로인 한국 상륙’을 허술하게 처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더구나 방콕·홍콩·뉴욕 등 쿤사가 개입하는 해외 마약시장에는 치밀한 비밀 정보망과 정예 조직이 자리잡고 있다. 쿤사 마약의 서울 침투를 ‘단순 사건’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쿤사 마약 조직이 이미 국내에 침투해 있었다는 사실은, 지난해 8월 쿤사 지역을 탈출해 귀국한 뒤 지난 6월 한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문충일씨의 아들 문 철군의 사인과 관련해서도 큰 의혹이 제기된다. 당시 경찰은 문충일씨 가족이 타살 의혹을 제기했는데도 문군의 사인에 대한 수사를 철저히 하지 않은 채 익사체로 발견됐다는 점을 들어 실족사로 잠정 결론지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쿤사 조직과 연관된 인물들은 이미 몇년 전부터 국내에 발붙이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성동경찰서 이연수 수사과장은 “윤우근 일당을 신문한 결과 <시사저널>의 쿤사 관련 보도 내용 전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쿤사 지역에서는 문충일씨가 별로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말했으며 문 철군이 사망한 6월10일 전후의 알리바이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을 얻어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범 윤우근씨의 여권에는 그가 문군 시체 발견 사실이 보도된 날(6월11일) 태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측은 이번 사건 수사를 애초 문군 살인 사건보다는 쿤사 마약 밀반입 경로에 맞췄다고 시인했다. 따라서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에서는, 쿤사 조직의 서울 침투 상황 전모와 이들 마약 조직이 문군을 살해했는지 여부도 철저히 재수사해 가려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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