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생 "유급되느니 제적당하자"
  • 朴晟濬 기자 ()
  • 승인 1996.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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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대생 집단 행동 파국으로 치달아… 정부, 획기적 조처 마련해야

각대학이 교육부에 보고한 한의대생 유급 시한이 이미 지났거나 임박한 가운데 11개 한의대생들의 집단 행동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11월 ‘유급 불사’를 결의했던 전국한의과대학학생회연합(전한련·의장 이영욱 동국대 한의대 학생회장)은 1월5~6일 서울 경희대에서 열린 대표자회의에서 ‘현재 상황이 계속되는 한 유급 투쟁은 물론이고, 투쟁 강도를 더욱 높여 나가 앞으로는 등록 거부 투쟁과 제적 투쟁까지 벌이겠다’고 결정했다.

집단 행동의 시발점이 된 지난해 9월 ‘수업 거부’ 결의 이후 한의대생들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를 상대로 극한 투쟁을 외치며 내걸었던 요구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기나긴 한약 분쟁의 조정안으로 정부가 내놓은‘약대내 한약학과 신설 허용’ 결정을 전면 백지화하고, 다른 과 출신이라도 한약학과 국가고시에 응시하도록 규정한 자격 요건을 수정해 한약학과 출신자만 시험을 보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16일 △약대내 한약학과 설치 △한약사 시험 매년 1회 이상 실시 등을 골자로 한 절충안을 내놓았다. 당시 약사회측은 교육부 절충안이 의료 체계 이원화를 부채질할 우려가 있다며, 한약사제도 자체를 없애고 이미 설치된 한약학과를 통폐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의대생들은 이와 정반대 주장을 폈다. ‘정부 결정은 약사회 입장만 반영한 것으로 한의학 말살 정책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정부 차원의 절충안은 처음부터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제공했던 셈이다.

한의대생들의 ‘유급 투쟁’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두달 뒤인 지난해 11월이다. 가뜩이나 수업 거부가 확산되고 있던 상태에서 당시 교육부장관이 한의대를 설치한 대학의 총장을 불러 ‘유급을 막지 못할 경우 국고 보조금 등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강경 방침을 통고한 사실이 알려져 학생들을 자극했던 것이다. 현재 유급 대상 인원은 11개 대학 3천8백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경희대 한의대는 유급 시한일인 1월4일을 넘겨 적어도 날짜상으로 유급이 확정되었다. 원광대 한의대는 한의대생 일부가 수업에 복귀할 움직임을 보여 최종 유급 조처를 유보했지만 상황은 극히 위태로운 상태이다. 한의대 공통의 법정 수업 일수는 16주이므로, 95학년도 방학이 끝나는 올 2월 말까지 수업 일수의 3분의 2를 채우지 못한 대학에서는 집단 유급 사태가 불가피하다.

정부의 결정에 대한 한의대 졸업 예정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재학생의 유급 투쟁에 보조를 맞춰 1월12일 치러질 한의사 국가 고시를 사실상 ‘집단 거부’했다. 지난해 연말 원서 접수를 마감한 한의사 시험의 최종 응시(예정)자 수는 10명뿐이다. 현재 교육부는 일단 예정된 날짜에 시험을 치르고 별도로 재시험을 치를 방침이나 그 전제 조건으로‘학생들의 수업 복귀’를 내걸었다. 파국을 막을 열쇠를 쥔 보건복지부는 장관 면담 등 계속되는 한의대생들의 요구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있다. 획기적인 조처가 나오지 않는 한 93년 이래 계속된 한약 분쟁은 올해 최악의 파국을 연출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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