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희 장관 해임 파문이 남긴 것
  •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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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 역사 해석은 금물
장관으로 발탁될 당시 ‘뜻밖의’ 인사로 화제를 모았던 김숙희씨가 다시 ‘뜻밖의’ 시기에 자리를 떠났다. 김영삼 대통령은 김숙희 교육부장관이 ‘한국의 교육정책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10일 국방대학원에서 행한 특별 강연 내용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로 간주해 5월12일자로 김장관을 전격 해임했다.

지상에 알려진 김장관의 강의 개요는 이러하다. 그는 전시가 아닌 평화 시기에 한국 군대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와 명분을 같이 고민해 보자고 수강생들에게 제안하면서,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대한민국의 군대가 “참으로 명분 있는 전쟁을 수행했느냐 하는 문제에 오면 좀 확연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난제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6·25전쟁은 “명백하게 동족간의 분쟁을 초래한 것”으로 “민족 간의 대자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 못한 전쟁”이며, 베트남전쟁은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직접적으로 무력의 위압이 부재한 상황에서 용병으로 참여한 전쟁일 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군대는 평화 시기에 존속할 수 있는 전쟁의 명분을 아직 확연하게 획득하지 못했다”며 자기가 “좀 조심스럽고 외람되게” 이를 지적해 보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숙희 교육부장관의 이와 같은 강의 내용은 일단 지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첫째는,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윤리에 관련된 이유이다. 자신이 국방대학원으로 초청된 까닭은 교육부장관이기 때문인데, 거기에서 ‘명분 없는 군대’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화약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든’ 만용에 다름 아니었다.

둘째는, 한국 군대의 존속 명분에 관한 것이다. 김숙희 장관에 따르면 군대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다른 민족으로부터의 직접적인 무력 위압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군대가 필요한 까닭은 안보 그 자체이다. 안보에 대한 위협은 대외적인 것일 수도 있고 대내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직접적인 것일 수도 있고 간접적인 것일 수도 있다.

셋째는, 한국전쟁 및 베트남전쟁에 관해 역사적 평가를 하는 자세 문제이다. 김장관은 한국전쟁을 동족 간의 분쟁, 곧 내전으로 인식했다.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이 참전한 것은 미국의 용병 자격이었다고 간주했다. 이는 기존의 지배적 역사 해석과 분명히 배치되는 것이다. 여기서 김장관의 역사관 자체는 별도로 치더라도, 그 두 전쟁에 참가하여 희생된 국군 및 그 유족들에 대한 경의와 위로는 반드시 강조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김숙희 교육부장관 해임을 놓고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의아한 점은, 이런 장관이 어떻게 발탁되었으며 어떻게 하여 비교적 오랫동안 국무위원 자리에 머무를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김영삼 정부의 인사 정책 자체도 비판의 화살을 받아야 한다. 장관직 임면권자로서 김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한 해명에 직접 나서야 한다.

논의 활성화 계기 삼아야

한편 김장관 해임과 더불어 우리는 그가 갖고 있던 문제 의식 자체를 던져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김장관이 핵심적으로 제기하고 싶었던 주제는, 오늘의 시점에서 국군의 위상과 역할을 어떻게 정립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른 냉전 종식, 북한을 협력과 동반 관계로 인식하려는 통일 정책의 변화 그리고 군부 정권의 퇴진 등을 감안할 때, 국군의 존재 이유를 재정립할 필요성은 불가피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과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따라서 과거 전쟁에 대한 명분 시비에 휘말린 나머지, 보다 미래지향적인 국가적 문제마저 도외시할 수는 없다. 세금을 바치고 아들을 보내는 것이 국민의 의무라면, ‘왜’라고 질문할 권리 또한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한국전쟁의 성격과 베트남 참전에 관한 논의가 개방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획일적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김숙희씨를 좌경시하거나 이적시하는 작금의 풍조는 한국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규범적으로 재확인하고자 하는 것일 뿐,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거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내는 일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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