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발포의 진실은 묻히는가
  • 김 당 기 자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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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년이 흘렀다. 우리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광주의 공소시효’를 석달 앞둔 지금 한 이방인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15년 만에 금남로 도청앞 ‘민주광장’에 서서 ‘광주’를 증언하는 아널드 피터슨 목사(아래 사진)가 그이다.

광주시 의회와 5·18 재단 초청을 받아 방한한 52세의 피터슨 목사(광주 항쟁 당시 광주에서 선교사로 근무)는 “5·18 당시 상황을 성직자의 양심을 걸고 증언하겠다”고 왔다. 그는 방한 즉시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증언의 핵심 쟁점은 헬리콥터 기총소사 부분이다. 헬기 기총소사를 목격한 최초의 증언자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비오 신부이다. 조신부는 88년 국회 광주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목격담을 증언한 바 있다.

두 사람의 증언에는 별 차이가 없다. ‘성직자의 양심을 건’ 것도 공통점이다. 차이점이라면, 한 사람은 광주항쟁에 직접 참여한 한국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제3자인 미국인 관찰자라는 점뿐이다. 그리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점이 우리를 더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 부끄러움은 진상 규명에 인색한 김영삼 정권의 역사 인식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12·12(‘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와 5·18(‘훗날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에 대한 김대통령의 차별 대우에서도 알 수 있다. 12·12 관련 장성들은 줄줄이 옷을 벗은 반면에 5·18 관련 장성들은 오히려 승진을 거듭해 왔다.

역사의 평가는 진상 규명을 전제로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왜 쏘았는지 규명하지 않는 역사의 평가는 헛될 뿐이다. 헛됨은 또 다른 피터슨으로 악몽처럼 거듭 나타나 관련 당사자들과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역사의 공소시효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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