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은 ‘하나회’ 숙제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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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장성급 정기 인사에 ‘구제’약속 안 지켜져 …이택형 예비역 중장 전역 처분 취소 청구
‘인사는 만사’라는 김영삼 대통령의 철학에도 불구하고 김영삼 정부의 인사는 늘 뒤탈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4월12일 단행된 국방부의 장성급 정기 인사도 예외가 아니다.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배제와 전략 증강 계통의 실무형 우대로 요약된 이번 인사에서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번에도 군 수뇌부와 국군 통수권자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93년 김동진 당시 육군 참모총장은 진급 심사를 앞두고 “하나회에 대해서는 1년에 한해 불이익을 주고 그 이후로는 동기생들과 똑같은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지난해 4월 국방부는 하나회의 중장급 이상 장교에 대해 보직 해임 조처를 하면서 “이제 군 안에 사조직은 없고 대한민국 국군 장교단만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김영삼 대통령도 하나회 출신 장교들에 대한 인사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군 관련 행사에서 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보듯 그같은 약속이 지켜지리라고 보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군 내에서는 오는 10월에 있을 정기 인사에서 하나회 구제 문제가 또 재론되겠지만, 논란의 여부를 떠나 갈등을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어쩌면 그같은 우려는 당장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회 출신으로 낙인 찍혀 전역 처분을 받은 이택형 예비역 중장(육사 19기·전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이 자신은 하나회에 가입한 적이 없다며 최근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전역 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그것이다. 특히 이 소송은 4월12일의 장성급 정기 인사 바로 다음날에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에 대한 불만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과 함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씨가 소장에서 밝힌 소송 이유는 “하나회 소속 선배 및 동료와 친분 관계는 있었으나 하나회에 가입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하나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전역 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씨가 하나회 회원인지 또는 가입한 적이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나회 자체가 비밀 결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93년 5월 군 검찰부가 하나회 회원 명단을 토대로 회원 장교들에 대한 확인 조사를 벌인 과정에서도 거의 대부분이 모호한 대답이나 부인으로 일관한 것으로 전해진다. 물론 이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93년 3월과 4월 두 번에 걸쳐 김진영 육군 참모총장(17기), 서완수 기무사령관(19기), 안병호 수방사령관(20기) 등 하나회 회원으로 분류된 고위 장성들에 대한 전격적인 경질 인사가 취해진 시점에서 이들이 스스로 하나회 회원임을 인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선“YS 자기 사람 심기도 문제”

따라서 당시 군 검찰의 조사는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사실상 하나회의 집단적 반발을 예상한 법적 대응의 예고인 셈이다. 즉 당시 3, 4월의 전격적인 군 수뇌부 경질은 하나회를 제거하려는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간주되었다. 당연히 하나회 회원들 사이에 상당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김영삼 정부는 이들의 동요와 집단적 반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고, 군형법상의 사조직 금지 조항에 따른 법적 대응을 경고함으로써 이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길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 메시지는 명예 전역(자진 사퇴)이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난해 4월16일 육군 정기 인사에서 하나회 출신 중장 이상 13명 전원을 보직 해임하고 소장들을 사단장 보직에서 제외한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번 이택형 전 전략기획본부장이 소송을 낸 것을 그동안 인사상 불이익을 당해온 하나회의 조직적 반발로 연결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우선 하나회 조직 자체가 사실상 궤멸된 데다, 정부가 이미 지난해 4월 정기 인사 전에 군인사법을 개정해 전역 처분에 반발하는 하나회 전역자들의 행정소송에 대한 법적 대응 조처를 끝내 놓았기 때문이다. 개정된 군인사법 시행령은, 임기중 귀책 사유로 보직에서 해임돼 3개월 안에 보임되지 않으면 현역 복무 적합 여부를 심사 받아 강제로 전역 조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씨가 소송과 관련해 언론과 접촉을 피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회의 조직적 반발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주변에서는 특히 이씨가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있다가 93년 12월 보직 해임되어 육군본부 대기발령을 받았는데, 당시 국방부가 해임 사유로 이씨의 재산(12억4천만원으로 현역 장성 중 최고)을 들어, 축재에 의한 징계로 언론에 비치게 한 것에 대한 반발로 보고 있다. 즉 조직적 반발이라기보다는 개인적 명예 회복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역시 하나회 회원으로 분류돼 함께 보직을 해임당한 이씨의 육사 동기 ㄱ장군(전 합참 작전기획본부장·19기)도 “지난해 연말 이후 전화 연락조차 한 번 없었다. 특히 소송과 관련해서는 어떤 얘기도 들은 바가 없다”고 밝혀 하나회와의 관련을 부인했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군 출신 의원은, 하나회의 무장이 해제된 지금 당장 반격은 불가능하지만 하나회를 친다는 명분 아래서 나타난 군내 또 다른 사조직의 양태는 장기적으로 하나회 재건의 빌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른바 PK(경남·부산) 인맥이니 1·5 인맥(김동진 합참의장측근 라인)이니 하는 `‘자기 사람 심기 인사’야말로 하나회가 반격할 토양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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